“비메모리 경쟁력 강화” 시스템반도체 핵심기술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뒷북 지원’ 논란

세종=전준범 기자 2023. 1. 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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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 시행령]
PIM·PMIC·T-Con 등 지능형 반도체 국가전략기술로
반도체·이차전지·백신 이어 디스플레이도 결국 포함
탄소중립 분야 등 신성장·원천기술은 12개 추가 지정
세제 혜택 강화했으나…일각에선 “느리다” 지적 나와
세금 감면과 최저한세 충돌 문제 고민 빠져 아쉬움도
연구원들이 반도체 웨이퍼를 검사하고 있다. / 뉴스1

통상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 저장,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시스템 반도체는 데이터 연산을 각각 맡는다. 그런데 차세대 반도체인 ‘PIM(프로세싱인메모리·Processing In Memory)’은 프로세서와 메모리가 하나의 칩으로 만들어져 데이터 저장·연산을 혼자서 할 수 있다. 향후 PIM이 상용화하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출력해야 하는 고성능 인공지능(AI), 초대형 데이터센터 등의 분야에서 큰 발전이 기대된다.

정부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의 차세대 반도체 시장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고자 PIM과 같은 지능형 메모리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세제 혜택을 강화하기로 했다. 전자기기에 전력을 공급·제어하는 ‘전력관리반도체(PMIC)’와 디스플레이 패널의 원활한 구동을 돕는 ‘T-Con(Timing Controller)’ 등 신개념 반도체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됐다. 또 정부는 반도체·이차전지·백신 등 3개 분야에 국한했던 국가전략기술에 디스플레이를 추가하고, 탄소중립 기술을 중심으로 신성장·원천기술 범위도 넓혔다.

다만 일각에선 국가 간 반도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차세대 반도체 지원 속도가 너무 느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메모리 쪽에서는 세계 최강을 자부하지만, 시스템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미국·대만 등 주요 경쟁국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도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세제 혜택과 별개로 일정 수준 이상의 법인세를 반드시 내도록 하는 최저한세의 존재도 반도체 세제 지원 확대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4월 29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부설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 7개 반도체 신기술 국가전략기술에 합류

기획재정부는 18일 일자리·투자 세제 지원 강화를 위한 국가전략기술 범위 확대 내용이 담긴 ‘2022년 세제개편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국가전략기술은 국가 경제‧안보 차원의 전략적 육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규모 세제 혜택을 주는 기술이다. 현재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이차전지·백신 등 세 가지다. 정부는 이들 국가전략기술에 일반 연구개발(R&D) 대비 높은 세액공제율(중소기업 40~50%, 중견·대기업 30~40%)을 적용한다.

우선 정부는 국가전략기술 세제 혜택을 받는 반도체 기술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쪽에서는 PIM이 포함됐다. PIM은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차례로 거쳐 가는 기존 데이터 처리 시간을 단축한 하이브리드 칩으로,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가 대용량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생기는 병목현상 해결의 열쇠로 꼽힌다. 고속 고용량 데이터 처리가 기본인 AI 반도체 발전을 위해서는 PIM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2022년 세제개편 후속 시행령 개정안' 주요 내용. / 기획재정부

또 정부는 에너지의 효율적 전력 변환에 사용되는 ‘고전압 아날로그 IC’와 ‘초고전압(UHV)’ 기술, T-Con과 PMIC 등도 반도체 관련 핵심 기술에 추가했다. ‘파운드리향 IP 설계·검증’ 기술과 ‘시스템 반도체 테스트’ 기술 등도 국가전략기술에 신규로 포함됐다. 이들 기술에 대해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분야 미래 먹거리를 연구하는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R&D 세액공제율이 중소기업 30~40%, 중견·대기업 20~30%로 국가전략기술보다 조금 낮은 신성장·원천기술의 범위도 확대됐다. 정부는 액화수소 운반선의 액화수소 저장 기술과 해상풍력 발전단지 내·외부 전력망에 사용되는 해저케이블 시스템 기술 등 탄소중립 분야 기술 8개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설계·검증·제조 기술 등 에너지·환경 분야 기술을 신성장·원천기술에 추가했다. 이로써 세제 혜택을 받는 신성장·원천기술은 260개에서 272개로 12개 늘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22년 6월 27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카이스트(KAIST)에서 열린 'PIM 반도체설계연구센터 개소식'에서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 뉴스1

◇ ‘中 추격 위기감’ 디스플레이도 입성…일부는 “늑장대응” 비판

일각에선 경쟁국 대비 늦은 만큼 공격적으로 치고 나가야 하는 우리나라 차세대 반도체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의 국가전략기술 지원 강화 속도가 너무 굼뜬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일례로 전력 제어·관리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PMIC는 전기차 보급 확산과 맞물려 높은 성장성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선 절대강자로 통하지만 PIMC 시장에서는 세계 점유율 6.6%로 6위에 머물러 있다.

PIM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육성하겠다고 한 기술이다. 정부는 문 전 대통령의 2019년 10월 AI 기본구상 발표 이후 PIM 반도체 핵심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9월이 돼서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 ‘PIM인공지능반도체 사업단’을 꾸렸다. 기재부는 이로부터 4개월이 더 지난 다음 PIM을 국가전략기술에 담았다.

한 직원이 LG디스플레이의 중소형 8인치 360도 폴더블 OLED를 선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에 국가전략기술에 새롭게 합류한 디스플레이와 관련해서도 “세제 혜택은 반갑지만 너무 늦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와 마이크로 LED, 퀀텀닷 OLED(QD-OLED), 패널 제조용 증착·코팅 소재, TFT(Thin Film Transistor) 형성 장비·부품 등 디스플레이 핵심기술 5개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현재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업계의 위기감은 매우 크다. 한때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는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겼고,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시장에서도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재부와 산업부는 디스플레이의 국가전략기술 지정 여부를 두고 작년 내내 기 싸움을 벌였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세제 혜택을 과감하게 해주면 투자가 늘어나니까 정부도 손해 볼 게 없다”고 했으나 기재부 세제실은 세수 감소를 이유로 디스플레이 업계의 절규를 장기간 외면했다.

한 시민이 남산타워에서 서울 시내 주요 기업체 빌딩을 보고 있다. / 뉴스1

◇ 최저한세 장애물까지…세제 혜택 효과 제대로 누릴까

기업이 각종 세제 혜택을 받더라도 소득의 일정 수준 이상을 반드시 법인세로 납부하도록 한 최저한세 제도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현행 법인세 최저한세(대기업 기준)는 과세표준 100억원 이하 기업에 10%, 100억원 초과~1000억원 이하 기업에 12%, 1000억원 초과 기업에 17%의 최저한세율을 각각 적용하고 있다.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규모 시설투자가 가능한 반도체 대기업에 각종 감면 혜택을 주더라도 유효세율이 최저한세율인 17% 밑으로 내려가면 최저한세율을 기준으로 법인세를 부과한다는 뜻이다.

기재부는 최근 조특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회 제출 절차에 돌입했다. 국가전략기술에 관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중견기업은 8→15%, 중소기업은 16→25%로 강화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담겼다.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 10%까지 합치면 반도체 시설투자 세제 혜택은 최대 25%에 이를 것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세제 혜택 강화가 최저한세 제도와 충돌할 경우 어떻게 조치할지는 개정안에 담지 않았다.

조선 DB

한국경제학회가 2020년 발표한 ‘법인세 최저한세제가 수평적 형평성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매출액 5000억원 이상인 기업 530곳 중 최저한세율로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은 전체의 27.5%인 146곳에 달했다. 매출액 3000억~5000억원에 속하는 기업 324곳 중에서도 22.2%인 72개사가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대기업 4곳 중 1곳은 최저한세율로 법인세를 내고 있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저한세 적용으로 공제받지 못하는 부분은 다음 연도로 이월해 공제받도록 하고 있다”며 “이월공제 허용 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기업이 받아야 할 혜택을 못 받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한세에 막혀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기업으로선 그만큼 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월공제 기간 10년도 선진국과 비교해 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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