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연상호 감독 "강수연 선배 이야기 같아…운명 같은 영화"

"고전적 멜로와 SF의 결합…보편적 주제 전하고 싶었죠"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영화를 완성하고 나니까 이 이야기가 마치 강수연 선배 본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정이'는 제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특별한 운명 같은 영화가 됐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의 연상호 감독은 주연배우 고(故) 강수연에 대해 애틋함을 드러냈다.

오는 20일 공개를 앞둔 '정이'는 22세기 미래를 배경으로 최고의 전투 인공지능(AI)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다. AI 개발 프로젝트팀장 윤서현을 연기한 강수연은 이 작품을 통해 10년 만에 영화로 대중과 만나게 됐으나, 지난해 5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정이'는 그의 유작이 됐다.

1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연 감독은 "후반 작업을 하면서 강수연 선배가 이 영화를 선택했던 이유, 내가 왜 강수연이란 배우를 떠올렸고 이 영화가 하고 싶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많이 느꼈다"고 회상했다.

"선배님께서 후시 녹음을 하러 오셨을 때가 마지막이었어요. '정이'는 세트가 되게 멋있어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촬영 중에 메이킹 인터뷰도 다 했고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모든 걸 다 하시고 가셨다는 게, 평소에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 반영됐다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죠."

극 중 서현이 로봇 정이에게 내뱉는 "자유롭게 살아요"라는 대사 또한 공교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강수연 선배가 4살 때 데뷔를 해서 자기한테는 평범한 어린 시절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선배가 본인한테 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남아 있는 여성들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현장에서의 강수연에 대해서는 "다른 배우들에게 의지가 되는 선배이자 영화를 책임지는 배우로서 단단하게 연기를 해주셨다"며 "돌이켜보면 본인이 경험했던 현장과 다른 형식이라 낯선 점이 많았을 텐데도 내색 없이 어른으로서 현장을 잘 지탱해주셨다"고 말했다.

"현장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이렇게 현장을 좋아하는 배우가 왜 그동안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죠. 이 영화가 한국에서 잘 시도되지 않는 SF 작품이라 많은 도전이 필요했는데, 개인적으로 선배님이 후배의 도전을 마지막으로 좀 지지해주신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이'는 국내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이버 펑크(인간이 기계에 종속되거나 특정한 인물에 의해 세계가 지배되는 우울한 미래 세계를 묘사한 SF 장르)다. 그러나 SF라는 외피를 걷어내고 나면 딸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딸의 관계가 놓여있다.

연 감독은 "한국에 낯선 SF라는 장르가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주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흔히 우리가 신파라고 하는 한국의 고전적 멜로와 SF가 결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수연 선배의 연기가 영화를 만드는 강한 동력이 됐죠. 선배의 고전적이고 우아한 톤의 연기가 제가 생각했던 '고전적 멜로'라는 것과 시너지가 났던 것 같아요."

'정이'에서 전설의 용병 정이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시도한 김현주에 대해서는 "엄마이자 전사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풀어낼 수 있는 배우를 찾았는데 김현주 배우의 모습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며 "가장 믿고 작업할 수 있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연 감독은 최근 드라마 '지옥'·'괴이', 영화 '방법: 재차의'·'프린세스 아야'에 이어 '정이'까지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쉬지 않고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는 "공개 시기가 겹쳐지면서 몰아서 작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면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작업하고 (창작물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과 완벽하게 호흡한다는 건 예술가로서는 거의 축복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늘 그런 재능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웃음) 그 이상의 뭔가를 원한다면 욕심인 것 같고 이 정도에 감사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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