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하는 코인 시세에 '일사불란' 불법 송금
'실적 강조' 시중은행 허점 노출…"제도 개선 시급"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국내 코인거래소의 가상자산 시세가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4조원 넘는 자금을 해외에 유출한 조직이 대거 적발됐다.
이들은 총책을 정점으로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불과 2시간 만에 거액을 해외로 빼돌리는 '속도전'을 펼쳤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해외로 반복해 반출되는 상황인데도 일부 시중은행은 외환 영업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짜 무역대금 송금…해외서 싼값에 가상자산 구매
18일 검찰과 세관의 합동 수사 결과 국내와 해외의 가상자산 시세 차익을 노린 불법 해외 송금 규모는 4조3천억원에 달했다.
조직들은 김치 프리미엄이 형성되는 시점에 무역회사를 통해 허위 무역대금을 해외에 송금하고,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국내보다 싼 가격에 가상자산을 매입했다.
이후 국내 코인거래소에 전송해 김치 프리미엄이 붙은 값에 되팔아 수익을 챙겼다.
가상자산은 시시각각 시세가 바뀌므로 '시간'이 범행의 생명이었다. 조직들은 총책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각자의 역할에 따라 정교하게 속도전을 펼쳤다.
실제로 2021년 12월 일어난 범행 사례를 보면, 총책의 송금 지시에 따라 투기자금팀이 1분 만에 15억원을 팀장에게 송금했다. 팀장은 송금업체를 통해 이 자금을 해외에 보냈는데, 그사이 걸린 시간은 불과 2시간이다.
해외팀은 이 자금으로 현지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매입하고, 국내 코인거래소로 전송해 되파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9천만원의 김치 프리미엄 이익을 얻어 분배한 것으로 조사됐다.
종잣돈은 고스란히 남게 되므로, 다시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하는 시점에 외화 송금과 코인 구매, 재판매를 되풀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업형·기업형·중계형…범죄 유형도 천차만별
검찰과 세관은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 속에서 조직마다 다른 범죄 유형을 확인했다.
'분업형'은 총책이 속한 재정팀이 무역회사로 자금을 모으고, 송금팀이 허위 인보이스를 작성해 은행 송금 절차를 밟았다. 해외팀은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들여 국내 코인거래소로 전송했다. 이 과정에서 송금팀은 송금액의 0.3∼0.5% 수준의 수수료를 받았고, 재정팀과 투기자금 제공자는 매각 수익금을 나눠 가졌다.
총책이 페이퍼컴퍼니를 직접 운영한 '기업형'도 적발됐다. 이 조직은 총책이 허위 인보이스를 직접 작성, 은행에 제출한 뒤 돈을 해외로 보내고 해외팀은 가상자산을 총책에게 전송하는 더 단순한 구조로 설계됐다.
해외 업체의 금 거래에 무임 승차한 '중계형'도 있었다. 홍콩 현지 골드바 구매 업체는 구매대금을 매각 업체에 지불하는 대신, 현지 거래소에서 산 가상자산을 국내 조직 총책에게 전송했다. 총책은 이를 국내에서 매각해 김치 프리미엄을 제하고 남은 돈을 현지 매각업체에 골드바 중계무역 대금으로 포장해 송금했다.
검찰은 각 조직의 주범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자금 제공자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공생 관계를 맺은 사실도 확인했다.
외화 송금이 불법 자금세탁을 위한 통로로 활용된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반출된 자금이 돌아오지 않거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 수익금과 연결된 흔적이 있어 자금흐름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5개월간 1조4천억원 송금해도 은행은 '나 몰라라'
이 같은 불법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조직들이 국내 시중은행의 허점을 파고들었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시중은행은 형식적인 사전서류 심사와 사후 점검 미비로 페이퍼컴퍼니인 송금업체가 최대 수백억원을 하루에만 여러 차례 송금했음에도 걸러내지 못했다.
특히 일부 영업점은 외환 송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 혈안이 돼 송금 사유나 증빙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범행이 계속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시중은행 지점은 5개월간 320회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 명목으로 1조4천억원 규모의 외화가 송금됐는데도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당 직원은 포상까지 받았다고 검찰은 전했다.
본점 차원에서 의심거래보고(STR)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영업점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결국 금융당국이 수사기관에 통보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려 '치고 빠지기' 작전을 하는 조직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검찰·세관은 이 과정에서 전직 은행원인 금융기관 브로커까지 가담한 사실도 적발했다. 조직들은 거래실적이 없었음에도 은행 지점장과 직접 접촉해 송금 한도를 높이고 우대 환율까지 적용받아 범행 수익을 극대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향후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연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새로운 유형의 가상자산 투기행위가 적발된 만큼,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수사와 처벌이 병행되지 않으면 신종 수법을 장착한 투기 세력은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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