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심준석과 계약한 피츠버그의 팜 시스템은

이창섭 2023. 1. 1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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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셰링턴 단장(왼쪽)과 2021년 드래프트 1순위 헨리 데이비스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덕수고 투수 심준석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계약했다. 심준석은 'MLB 파이프라인' 국제 유망주 순위에서 투수 2위, 전체 10위에 오른 유망주다. 투수 1위는 쿠바 출신 루이스 모랄레스로, 심준석보다 두 살이 더 많다. 유망주 가치는 나이가 어릴수록 더 높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중요하게 바라보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체격 조건과 잠재력이다. 후천적으로 달라지기 힘들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분을 중시한다. 심준석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피츠버그 국제 스카우팅 디렉터 주니어 비스카이노는 "신이 주신 재능"이라고 표현했다.

피츠버그는 한국 선수와 각별한 팀이다. 2010년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마침표를 피츠버그에서 찍었다. 아시아 최다승인 통산 124승을 피츠버그에서 만들어냈다. 2015년에는 강정호가 뛰었고, 박효준과 배지환, 최지만도 피츠버그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최지만과 배지환의 동시 활약이 예고된 올해는 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팀이다.

피츠버그는 약팀의 대명사다. 승자로서의 역사보다 패자로서의 역사가 더 길다.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도 1979년이다. 이 축배가 끝난 뒤 33년간 합산 승률이 .464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두 번째로 나쁜 승률이었다. 가장 나쁜 플로리다/마이애미(.460)가 1993년에 창단된 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꼴찌다.

2013년 무려 21년 만에 5할 승률을 넘어선 피츠버그는, 2013-2015년 3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았다. 리빌딩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다시 암흑기에 빠졌다. 2021년 101패에 이어 지난해에도 100패를 당했다. 2020년 단축 시즌 포함 3년 연속 승률 3할대를 맴돌고 있다(2020년 .317, 2021년 .377, 2022년 .383). 2019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패배를 당한 팀이 바로 피츠버그다(335패, 볼티모어 332패).

올해도 피츠버그는 당장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조직력은 갖춰지고 있다. 벤 셰링턴 단장도 지난 시즌이 끝나고 "우리는 점점 경쟁력 있는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속도가 빠르진 않아도 방향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2019년 겨울, 피츠버그는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오랜 기간 팀을 이끌었던 닐 헌팅턴 단장이 물러나고 셰링턴이 새 단장으로 부임했다. 팀 개혁이라는 중책을 맡은 셰링턴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뜯어고쳤다. 감독과 코치진, 프런트를 싹 갈아치웠다.

셰링턴은 보스턴 단장 시절 강력한 팜을 구축했다. 유망주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무키 베츠와 잰더 보가츠, 라파엘 데버스가 셰링턴이 뽑은 대표적인 선수들이었다. 과거 보스턴에서 셰링턴을 지켜봤던 마이크 헤이즌 애리조나 단장은 "그의 열정은 스카우팅과 선수 육성 분야에서 가장 빛난다"고 설명했다.

셰링턴은 피츠버그에서도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보직이 팜 디렉터였다. 이에 부임하고 1년이 지나서야 새로운 팜 디렉터를 영입했다. 셰링턴이 신중하게 데려온 팜 디렉터는 시카고 컵스 멘탈 코디네이터 존 베이커였다. 그리고 베이커에게 피츠버그 팜 디렉터를 추천한 인물은 다름 아닌 테오 엡스타인이었다(엡스타인 후임으로 보스턴 단장이 된 인물이 셰링턴이다).

셰링턴과 베이커가 의기투합한 피츠버그는 팜 재건에 속도를 올렸다. 2020년 팜 순위가 24위에 그쳤지만, 2021년 15위를 거쳐 지난해 3위까지 급상승했다. 'MLB 파이프라인' 유망주 담당 조나단 마요는 피츠버그 팜에 대해 "유망주의 폭이 넓어졌다. 심지어 30위권 밖에 있는 유망주들도 흥미롭다"고 총평했다.

과거 피츠버그는 상부 조직이 정한 방침을 하부 조직이 그대로 따라야 하는 하향식 구조였다. 싱커-땅볼 유도-시프트 전략이 결정적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 방식이 성과를 거두자 모든 마이너리그 투수들에게 똑같은 피칭을 주문했다.

다양성을 배제한 부작용은 이내 나타났다. 피츠버그는 급변하는 트렌드에 순응하지 못했다. 문제가 바뀌었는데 똑같은 답안만 내놓았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실제로 피츠버그에서 촉망 받은 투수들은 팀을 옮기고 나서 진가를 드러냈고, 일부 투수들은 피츠버그의 무리한 주입식 교육에 반론을 제기했다.

셰링턴은 이 관습을 폐기했다. 팀 컬러보다 선수 개성을 최우선으로 뒀다. 선수들도 달라진 시스템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더블A와 트리플A에서 뛴 우완 투수 마이클 버로우는 셰링턴 시대 이전과 이후를 모두 겪었다. 버로우는 작년 1월 '베이스볼아메리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프런트는 선수 개인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전보다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두고 "어른과 프로 선수처럼 대우해준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피츠버그는 암울했던 메이저리그와 달리 마이너리그는 희망적이었다. '디애슬레틱'에 의하면 피츠버그 마이너리그 7팀의 도합 승률이 .517로 내셔널리그 네 번째로 높았다. 트리플A에서는 노히터가 탄생했으며, 더블A에서는 단일 시즌 팀 홈런과 도루 기록을 경신했다(143홈런 160도루). 최고 유망주 엔디 로드리게스는 상위싱글A MVP로 선정됐다. 셰링턴과 베이커가 뿌린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피츠버그도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에 앞서 과정은 바람직하게 흘러가고 있다. 심준석도 선진화된 피츠버그 팜에서 잘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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