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 300명 몰살 현장에서 유전자 감식

송은범 기자(song.eunbum@mk.co.kr) 2023. 1. 1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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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4000명, 최대 7000명 학살 당한 골령골
4·3 때 대전형무소 수감 도민들도 죽임 당해
제주도·4·3평화재단 ‘유전자 감식’ 추진키로
애버트 미군 소령이 찍은 대전 골령골 학살 모습. 무릎을 꿇린 채 뒤통수에 총을 겨눈 것을 보면 1950년 7월 초중순 벌어진 학살로 추정된다.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골령골에서 희생된 제주4·3 수형인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희생됐기 때문에 사진 속 인물이 제주도민일 수도 있다. [자료=제주 대정읍 하모 출신 이도영 박사 발굴]
300명에 육박하는 제주도민이 몰살을 당한 곳에 대한 유전자 감식이 추진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대전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4·3 희생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을 추진한다고 18일 밝혔다.

감식 장소는 대전 낭원동 골령골 학살터다.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사이 최소 4000명, 최대 7000명이 학살된 곳이다. 당시 군·경은 제주4·3을 비롯해 여·순, 보도연맹 관련 등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수형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유족들은 이 곳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부른다.

이와 관련 학살 직후인 1950년 9월 현장을 둘러본 영국 ‘데일리워커’의 앨런 워닝턴 기자는 “나치 살인수용소에 관한 글을 읽으며 그 곳이 어떠했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골령골을 보고) 그 때의 내 상상이 어처구니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증언했다.

골령골에서 학살된 제주도민은 298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4·3 제2차 군법회의(1949년 7월 2일~4일)를 통해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도민들이 대전형무소로 옮겨진 것이다.

학살 처음에는 기둥에 묶어 7m의 거리를 두고 사격을 했지만, 전황이 급박해지자 구덩이 쪽으로 무릎 꿇리게 한 뒤 그대로 뒤통수에 총격을 가했다. 제주 출신 수형인은 뒤통수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한 1950년 7월 3일부터 5일 사이에 희생됐다.

제주4·3을 비롯해 여·순, 보도연맹 관련 등으로 최대 7000명이 학살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자료=오마이뉴스 심규상]
이번 유전자 감식을 위해 제주도는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대전 동구청과 협의를 진행했고, 마침내 200여구에 대한 시료 채취 및 유전자 감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도외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4·3희생자에 대한 유전자 감식사업을 통해 유족의 평생 한을 위로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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