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규모 지방출연기관 '우후죽순' 설립 제동
기사내용 요약
행안부, 조직 설계 가이드라인 제시
최소인력 광역 28명·기초 20명 이상
경상 경비, 인건비 25% 넘지 말아야
[세종=뉴시스] 변해정 기자 = 앞으로 상시 근로자 수가 20명이 채 안 되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출자·출연기관은 설립·운영을 할 수 없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방 출자·출연기관 설립기준' 개정안을 오는 19일부터 시행한다고 18일 밝혔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지방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방향'의 후속 조치다. 조직 규모가 턱없이 작아 사실상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지방 재정만 갉아먹는 이른바 '좀비기관'의 난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지자체 산하 832곳 난립…20명 미만 '좀비' 절반 달해
지난 2021년 말 기준 전국 지자체의 출자·출연기관은 832곳에 달한다. 출자 98곳, 출연 734곳이다.
출자·출연기관은 지역개발과 의료·장학·문화·예술사업 등을 수행하기 위해 지자체가 개별법령이나 조례에 따라 설립하는 주식회사 또는 재단법인을 말한다. 경기도의 킨텍스와 서울시의 서울의료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999년 출자·출연기관 설립 승인권이 지자체로 이양된 이후 2013년 말 558곳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이듬해인 2014년 정부는 사전 설립 협의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출자·출연기관 설립 러시는 기초 시·군·구를 중심으로 계속돼 2016년 말 645곳으로 증가했고 문재인정부 5년간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특히 출연기관은 지난 2016년 말 562곳에서 5년 만에 30.6%(172곳)나 늘어 734곳이 됐다. 5년 새 증가한 172곳 중 125곳(72.6%)은 시·군·구가 설립한 곳들이다.
또 전체 출연기관의 절반에 가까운 49.3%(362곳)는 상시 근로자 20명 미만의 소규모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10명을 밑도는 곳도 무려 37.6%(276곳)나 됐다. 출연기관의 적정 조직과 인력 규모 등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탓이다.
우려스러운 건 2021년 말 기준 부채규모 1000억원 또는 부채비율 200% 이상으로 재무 위험이 큰 출자·출연기관이 118곳(14.2%)이나 된다는 점이다.
행안부는 일부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 용으로 유사기관이 있음에도 신규 설립하거나 기준인건비 제약에서 벗어나 조직 확대 또는 보은인사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소규모 기관 난립은 비효율과 지방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며 걱정한다.
김광휘 행안부 지역경제지원관(국장)은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정책설명회에서 "소규모 기관 남설로 인한 문제가 현재 발생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적정 규모의 출연기관 설립을 유도해 비효율적 운영을 방지하고 지방재정 부담을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설립 단계 정부개입 강화…예속화 우려에 원칙 있게
이번 개정안에 담긴 '조직 설계 가이드라인'을 보면 출연기관 설립 시 최소 조직 규모를 광역 시·도는 28명 이상, 기초 시·군·구는 20명 이상으로 정했다. 이 인원을 채우지 못하면 애당초 설립조차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세부적으로는 사업부서 실무자 비율을 시·도는 75% 이상, 시·군·구는 65% 이상으로 차등 설정했다. 각각 적어도 21명, 13명은 돼야 한다. 이는 관리직과 지원부서 인원이 최소 7명(기관장 1명, 사업부서 팀장 2명, 지원부서 4명) 존재하는 점이 고려됐다.
관리직 인원과 지원부서 인원 비율은 20%를 넘지 않도록 했다. 본부를 설치할 땐 정원이 최소 51명, 2개 이상의 복수 본부를 설치할 때는 최소 151명을 두도록 했다.
단, 3년 이내 해산하는 한시조직이거나 별도 법령을 적용받는 경우라면 최소 조직 규모 적용 예외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또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사업비로 편성하고 업무추진비와 여비 등 경상경비는 인건비의 25%를 넘지 않도록 했다.
현재 20명 미만 출연기관의 경상비는 1인당 4700만원으로 전체 출연기관의 3500만원보다 1.5배 더 높은 상황이다. 총예산 대비 경상비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15.5%로 전체의 12.9%를 웃돌아 혈세 낭비가 심각하다.
여기에 신속한 의사 결정과 다양화·전문화된 행정 수요의 탄력적 대응을 위해 팀제로 운영하고 설립 초기부터 직무 중심의 인사관리를 도입하도록 했다.
설립협의 절차는 보다 더 까다로워진다.
지자체가 설립 결정 전에 출연기관 대상 사업의 적합성과 기관 설립 필요성, 기능 적정성 여부 등을 자체 점검할 수 있도록 사전점검표를 제공한다. 이후 두 차례의 설립협의와 타당성 검토 단계에서 사전점검표 충족 여부를 살펴보도록 했다.
설립협의 심사표는 일반출자기관, SPC(특수목적법인) 등 출자기관, 출연기관 등 3개 유형별로 구분해 기관 특성에 맞는 심사가 이뤄지도록 했다. 점수를 매긴 심사위원의 의견은 반드시 기재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밖에 타 기관과 혼동 방지를 위해 공사·공단·청 등 유사한 명칭 사용을 지양하도록 했다.
출자·출연기관이 조직 확대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기존 공무원 정원감축계획을 수립해야 설립협의를 할 수 있도록 하되, 감축 인력은 공무원 정원을 기준으로 산출하고 퇴직 등 현원 감소는 인정하지 않도록 했다.
장재원 행안부 공기업관리과장은 "최소 조직 규모 설정에 이의제기(반대)한 1곳이 있었고 설립 절차를 간소화해 달라는 요구도 받았으나 가이드라인 전반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했다"면서 "통제가 많은 공기업과 달리 출자·출연기관의 경우 최소한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왔다"고 전했다.
무분별한 난립에 정부가 제동을 거는 건 당연하나 일각에서는 지방공기업에 이어 출자·출연기관까지 지역 특성을 무시하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지방의 중앙 예속화가 깊어질 것이라 우려한다. 또 다른 갑의 횡포로 비칠 수 있고 자치분권의 참뜻이 왜곡될 소지도 있다.
이에 대해 박상국 공기업관리과 서기관은 "시·군·구 출자·출연기관에 대해 온전한 파악이 어렵다며 시·도에서 비공식적으로 관리 요청이 오곤 한다"며 "자율성을 최대한 주되 정부가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정해두면 운영의 건전성이 확보돼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jp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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