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의 시론]국민의힘이 사는 길, 죽는 길
당권 경쟁 양상 갈수록 저질화
구체안 없이 말로만 尹 뒷받침
최악 환경 타개할 비전 안 보여
국민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
파격적 정치 혁신안 제시하고
여소야대 넘을 방안도 내놔야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정권교체 지지 민심을 외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5년 10개월여 전 당 소속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어진 대선·지방선거·총선 참패로 존립을 위협받았던 정당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는 후보를 내지 못해 정치 참여 선언 4개월 된 윤석열을 후보로 선출했다. 정권을 되찾았지만, 득표율 격차는 0.73%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당수 지지표는 이재명 후보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권교체 8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싸늘한 민심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16일 발표된 여론조사(리얼미터·9∼13일)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9.3%인 반면, 부정 평가는 58.4%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율 역시 40.5%로 당 대표가 10건의 비리 의혹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5.2%포인트 뒤졌다.
그러나 당권 주자 중에 진심으로 자성하면서 당의 혁신을 다짐하는 후보는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 정부 성공을 뒷받침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지만, 구체적 비전과 방법을 제시하는 후보도 없다. ‘김장연대’를 내세워 친윤(친윤석열) 경쟁을 주도했던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르자 “철 지난 ‘김장연대’란 용어를 안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요청해 받은 공직을 3개월 만에 포기하고 당권 도전을 검토 중인 후보는 “죽었다 깨어나도 반윤(반윤석열)은 되지 않을 것 같다”며 친윤 경쟁에 합류했다. 당의 통합을 주장하는 후보 진영의 참모는 공천 전횡 우려를 제기하며 친윤 후보를 비판하고 있다. 몰염치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당 대표의 DNA로 굳어질까 우려된다. 이러니 누가 당권을 잡은들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힘을 주는 정당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압도적 과반수 의석을 가진 제1 야당이 윤석열 정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 지도부의 역할은 막중하다. 최악의 정치 여건을 극복하고 정권교체의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번 전당대회 자체가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는 과정이 돼야 한다. 당권 주자 간 통합을 전제로 미래의 비전과 현재의 개혁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기본이다. 첫 번째 경쟁 화두는 국민 신뢰 회복이다. 신뢰는 공감에서 나오고 공감은 소통으로 확산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의 개혁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동시에 국민의 비판을 적극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한다. 참모 조직인 대통령실이나 공무원이 주축인 정부 부처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여당은 민심을 앞세워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하고 견인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선제적으로 정치개혁을 주장해야 한다. 국민과의 공감 속에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혁신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대폭 축소하는 법 개정에도 앞장서야 한다.
두 번째 화두는 민주당의 협조를 끌어내는 정치력의 복원이다. 내년 총선까지 1년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기간이자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로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포함, 국정 운영 전반에서 성과를 거둬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법안을 제정이나 개정해야 하는데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야당의 자발적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 정체성과 국정 운영의 기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세 번째는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 기반 조성이다. 공천제도 혁신을 통해 젊은 세대와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보수 진영의 세력 교체, 시대 교체의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기존 의원들의 저항이 예상되는 만큼 공천제도혁신위와 공천심사위원회는 신망 있는 외부인사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정치 신인을 충원하고 여성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당 안팎으로 다양한 보수 싱크탱크를 다수 설립해 중장기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국정 운영의 비전과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국민의힘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을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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