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청소하기

2023. 1. 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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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에 대해 생각이 깊어질 이유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따금 미루게 되더라도 결국 치러야 하는 과업이요, 기계적인 습관인 청소란, 그러나 곱씹어볼수록 참으로 심오한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대체 이 일에 끝이란 있는 것인가, 공연히 시작한 것은 아닐까, 후회를 거듭하는 동안.

아마 그것이 나의 일상이고, 일상의 진면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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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백자가 어떤 모형으로 구워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정성 들여 유약을 칠한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길에서/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희고 맑다// 어느새 풍경은 백자가 되어 있다’

- 김혜린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청소에 대해 생각이 깊어질 이유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 않으면 더러워지니까, 귀찮고 힘들어도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이따금 미루게 되더라도 결국 치러야 하는 과업이요, 기계적인 습관인 청소란, 그러나 곱씹어볼수록 참으로 심오한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며칠 전 퇴근해 현관 앞에 서 있는데 순간, 집 안 모든 것이 ‘너무’ 많아 보였다. 출근할 때만 해도 대수로울 것 없었던 살림들이 삶을 가득 짓누르는 짐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말에 일을 벌이고야 말았다. 읽지 않는 책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죄다 끄집어내보았다. 이 작은 집에 이토록 많은 물건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반나절쯤 들이면 되겠지’ 했던 애초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이것을 치우면 저것이 거슬리고, 이곳에 두면 저곳이 부족한 혼란에 빠져 시간이 갈수록 집은 더 엉망이 돼가고 어느덧 저녁. 대체 이 일에 끝이란 있는 것인가, 공연히 시작한 것은 아닐까, 후회를 거듭하는 동안.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있었다. 아마 그것이 나의 일상이고, 일상의 진면목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청소를 거의 마쳤다 싶어진 한밤이 돼서 돌아본 집은 치우기 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깨끗해지고 단정해진 것은 나의 기분이었던 것이다. 요란법석 청소를 하는 동안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한 나의 삶. 그렇게 생각하니 한동안은 무척 잘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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