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근의 Biz이코노미] '매국행위' 기술유출, 일벌백계도 부족
기술유출 범죄 '솜방망이 처벌' 지적 수년째 이어져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고추장 맛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지난 1996년 고추장 광고에 나온 이 한마디의 광고 카피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으며 당대 최고 유행어로 자리매김했다.
이 광고 카피에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혹자는 가족에게도 떡볶이 노하우를 알려주지 못 하겠다는 '경영인'의 마인드를 두고 '너무 심하다'는 평가를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일반 음식점은 물론 식품 대기업에서도 영업비밀을 침해했느냐를 두고 각종 송사가 오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며느리에게 비법을 쉽게 내주지 않았던 떡볶이 장인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골목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도 법정 다툼까지 일어나는데, 최근 국가적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로 삼고 집중 육성의지를 밝힌 반도체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다른 나라에 기술을 유출한 사례가 발생했다.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장비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전직 연구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세메스 퇴직 연구원과 협력사 대표 등이 기술 유출 전문 브로커를 통해 기술 도면을 넘기는 대가로 1200억 원을 받았다. 특히, 재판에 넘겨진 이 연구원은 이미 또 다른 반도체 세정장비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기가 찰 노릇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이번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할 것이란 잿빛 전망이 나온다.
'기술이 곧 한 나라의 경쟁력'이 된 지 오래다.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중 간 무역갈등도 결국엔 첨단 산업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기 위한 패권 다툼의 연장선일 뿐이다. 국가 간, 기업 간 '기술'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수십 수백명의 연구진이 밤낮없이 매달려 완성한 기술을 빼돌리는 행위는 말 그대로 매국행위를 한 것과 다름없다.
최근 '저는 대한민국의 영업사원입니다'라고 공언한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3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전례 없는 매머드급 투자 소식에 국내외 관심이 집중됐다. 대규모 투자 내역을 살펴보면, 에너지·원전·수소·태양광·방산·ICT(정보통신기술) 등 국가 차원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분야다.
양국 간 '세일즈 외교'에서 최고의 '재료'가 된 우리나라, 우리 기업의 기술력이 일부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버젓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기술 유출 범죄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나라 경제에 미치는 피해 규모가 너무 크다.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수년째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핵심 기술을 해외 유출했을 때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법적 형벌로 이어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직접 경쟁을 벌이는 대만의 경우 지난해 5월 국가안전법을 개정, 핵심기술의 유출에 대해 경제간첩죄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일본은 기술 유출 방지와 중요 물자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마련하고 내각부에 담당 조직까지 신설한 것과 비교하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듯하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법원 사법연감을 기반으로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 81건을 검토한 결과 집행유예(39.5%), 무죄(34.6%), 재산형(8.6%), 유기형(6.2%) 순으로 판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안보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이를 지키고, 우리의 경쟁력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안 체계를 갖추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산업계 안팎에서 수년째 수없이 이어져 온 쓴소리를 더는 외면하지 말고,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서는 누구도 엄두조차 못 내도록 일벌백계해야 한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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