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의 문제적 인간 박희순의 행보가 위태롭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혜주야 사랑해. 나를 의심하지만 말아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SBS 월화드라마 ‘트롤리’(류보리 극본, 김문교 연출)의 남자 주인공 남중도(박희순 분)가 문제적 인간으로 떠올랐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선택의 연속이다. 가벼운 선택, 쉬운 선택도 있지만 무거운 선택, 어려운 선택도 있기 마련이다. 세칭 ‘트롤리 딜레마’란 것도 무겁고 어려운 선택의 대명사다. 또한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은 충분이 마주칠만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생을 그 딜레마에 시달리며 살 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김혜주(김현주 분)와 남중도처럼.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인 트롤리가 제동장치가 망가진 채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선로 위에는 5명의 사람이 있어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5명이 죽게 되고 선로를 바꾸면 5명은 살지만 바꾼 선로에 있는 사람 1명은 죽게 된다.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스위치는 당신 앞에 있다. 당신은 스위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육원 출신인 재은은 영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대입시험을 마치고 독립을 고민하던 시기에 동창인 진승호(이민재 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진승호는 가장 친한 친구 진승희(류현경 분)의 쌍둥이 형제로 서울대 법대 합격을 확정지은 상태다.
승호의 어머니 이영신(길해연 분)은 자랑스런 아들의 장래를 위해 덮어줄 것을 호소했다.
재은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피해자가 맞다. 부모가 없어도, 보육원에 살아도 피해자는 자신이다. 자신이 당한 피해는 그렇게 사소하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자신뿐이다. 재은은 경찰에 신고했고 그날 승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향 영산을 떠났다. 이름도 혜주로 바꿨다. 명백한 무죄임에도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었단 사실은 살도록 벗어날 길 없는 악몽이 되어 버렸다. 남중도를 만났다. 선하고 자상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 이 남자 품에서라면 조금은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남중도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정치의 길에 뛰어들었다. 자신은 길위를 흘러가는 무수한 이름들 속 하나이고 싶은데.. 혜주는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남중도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남자였으니까.
그런 그가 자신을, 자신의 과거사를 세상에 드러내려 한다. 남중도는 형법개정안을 준비중이다. 성범죄 가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되어 피해자가 사건의 진실에 대한 의혹 제기 등 2차 가해를 포함한 온갖 피해를 또다시 입게 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혜주는 공감한다. 본인이 친구이자 죽은 승호의 쌍둥이 형제인 승희에게 한 말도 있다. “승호가 죽어서 나는 진실을 밝힐 기회를 잃었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어.”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20년 세월을 가해자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서러움을 담아서.
문제는 남중도가 여론전의 기폭제로 삼았던 성폭력 피해자 남궁솔이 성매매 여성이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 대중은 또다시 의심어린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고 중도가 마련한 개정안도 표류할 위기에 처한다. 남중도는 더 많은 피해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혜주의 용기를 촉구한다.
이 대목에서 제목과 달리 트롤리 딜레마와는 거리가 생긴다. 트롤리 딜레마가 성립하기 위해선 선택자의 안전이 보장되고 희생이 되는 대상이 선택자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 5명 대신 1명을 희생시키려 했는데 그가 선택자의 아들이라면? 혹은 누군가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은 더 이상 딜레마일 수 없다.
17일 방영분에서 김혜주는 자신의 과거사 공개에 동의했고 다음날 집을 나서며 무수한 카메라 세례에 당황한다. 남중도가 딜레마를 끝내고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미 여러 장면에서 남중도의 변화는 노출됐다. 당대표 우진석(김미경 분) 앞에서 대권 도전까지를 염두에 둔 발언을 했었고. 자살한 남궁솔의 가해자인 의대생 지승규의 빈소를 찾아선 그 부친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장면을 정우재(김무열 분)에게 촬영케하여 여론반전에 이용하기도 했다. 최기영(기태영 분)을 통해 확보한 영산 토지투기 자료를 가지고선 상대당인 보국보민당 최고위원 강순홍(장광 분)과 거래도 한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정의롭길 원하고, 약자를 대변하고, 보다 나은 세상 만들기를 꿈꾸지만 그 꿈을 잘 이루기 위해서란 명분으로 술수를 쓰게 되고 야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건 목표를 가지고 출발한다. 남중도도 보다 나은 세상을 원했고 그걸 이루기 위해 권력을 얻고 싶어하는 중이다. 권력이란 누군가의 인생을 선택자로서 재단할 수 있는 힘이다. 남중도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 힘을 얻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둘의 위치가 바뀌고 오히려 권력을 위해 초심의 선한 가치를 희생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희생에는 자신이 영혼을 바쳐 사랑한 혜주가 포함될 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게 그렇다. 끊임없이 선택해야 되고 그 선택의 책임은 선택자가 짊어지게 돼 있다. 남중도 역시 그 선택이 안겨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트롤리’의 문제적 인간 남중도의 행보가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다.
“혜주야 사랑해. 나를 의심하지만 말아줘.”란 남중도의 호소, 과연 믿어도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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