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문명의 ‘엄격한’ 근친혼 풍습, DNA로 밝혀냈다
올리브·와인 재배했던 농지
상속으로 인한 분할 막으려
독일 출신의 사업가이자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유럽 문명의 발원지라 할 트로이, 미케네 등 선사시대 지중해 동부의 에게문명을 발굴하기 시작한 건 19세기 후반이었다. 에게해 주변 지역에선 기원전 7천년께 이미 농경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슐리만은 고대인의 무덤 속에서 화려한 금 부장품과 함께 다량의 유골을 발견했다. 그러나 무덤 속에서 출토된 유골들 사이의 관계는 추정만 할 뿐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스반테 페보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소장이 개척한 고유전체학이 100년이 훨씬 지나 과거의 그런 공백을 하나하나씩 메꿔가고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은 이제 수천년 전 유골은 물론 수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소변이 포함된 흙, 200만년 된 퇴적층에서도 DNA 조각을 찾아내 분석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국제공동연구진이 고대 게놈 분석 기술을 이용해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걸친 이 지역의 구체적인 가족 구성과 결혼 풍습 등을 밝혀내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에 최근 발표했다. 연구진은 그리스처럼 기후가 온난한 곳에서는 DNA가 오랜 기간 보존되기 어렵지만 게놈 분석과 평가 기법이 발전하면서 이런 곳에서도 고대 게놈을 추출해 분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섬 주민의 절반이 사촌과 결혼
연구진은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섬, 에게해 섬들에서 확보한 신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걸친 게놈 102개를 분석한 결과, 신석기 시대의 크레타섬과 에게해 섬 주민들은 같은 조상의 후예들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러다 신석기 시대 말기와 청동기시대 초기에 동쪽, 즉 아나톨리아반도로부터 새로운 유전자가 유입됐다.
연구진은 또 초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6세기 당시 미케네 지역 한 가족의 가계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고대 지중해 전 지역을 통틀어 최초의 시도이자 결과물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작은 마을의 한 집 안뜰 무덤에 묻힌 유골의 게놈 분석을 통해 가계도를 재구성했다. 당시 이 지역에선 아들 자식 가운데 일부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부모와 같은 집에 거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족의 경우 최소한 세 아들이 같은 집에 살았다. 또 이들 형제의 아내 중 한 사람은 자신의 자매와 그 아이까지 데려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지역 섬 주민의 약 절반이 사촌과 결혼했다는 점이다. 반면 그리스 본토에서는 그 비율이 약 3분의 1에 그쳤다.
이는 약 4천년 전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섬 등 에게해 섬들에서는 사촌과의 결혼을 단순히 허용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행으로 지켜왔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를 이끈 에이리니 스쿠르타니오티 박사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지역에서 1천개 이상의 고대 게놈이 수집돼 발표됐지만 이런 엄격한 근친혼 제도는 여태껏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대 DNA에 담긴 선사시대 서민의 삶
이런 독특한 결혼 풍습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됐을까?
현재로선 단지 추측만 할 뿐 정확한 답은 알아내지 못했다. 연구진은 자식한테 물려주는 토지가 대를 이어갈수록 잘게 쪼개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근친혼은 가족의 연속성을 보장해준다. 그리고 이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라 할 올리브와 와인 재배의 중요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논문 공동저자인 필립 스톡하머 박사는 “이는 여성들이 종종 수백km 떨어져 있는 곳의 남성과 결혼한 같은 청동기시대의 유럽 다른 지역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시엔엔’에 말했다. 스톡하머 박사는 그리스에는 작물을 재배할 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그런 차이를 부른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고유전체학이 이번에 밝혀낸 사실은 역사학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스톡하머 박사는 “당시는 궁전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나 기록을 남기던 때인데, 이제는 서민들에 대해서도 뭔가를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스쿠르타니오티 박사는 고대 게놈 분석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대 가족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안겨주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의 기술매체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고유전학의 새로운 발견이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며 고대 게놈 분석 기술을 ‘2023년 10대 미래 기술’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59-022-01952-3
Ancient DNA reveals admixture history and endogamy in the prehistoric Aegean
Nature Ecology & Evolution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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