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폰 2번호 e심, 해외선 20兆 시장 된다는데… 국내선 여전히 ‘반쪽짜리’
듀얼심 이용하려면 등록 절차 복잡
e심 지원 단말기도 턱없이 부족
해외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e심(eSIM) 시장이 국내에서는 까다로운 사용 조건과 통신사의 무관심으로 외면받고 있다. 1개의 스마트폰에서 2개 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e심은 칩을 스마트폰에 삽입해 이용하는 유심(USIM)과 달리 단말기에 내장된 칩에 가입자 정보를 내려받아 이용한다. e심 시장은 앞으로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통신사들은 최근 e심 사용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드는 등 국내 통신 환경이 글로벌 트렌드와 단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6일부터 e심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기기변경을 하는 경우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운영하는 ‘단말기 자급제 서비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단말기고유식별번호(IMEI)를 등록해야 한다. 국내에선 보통 하나의 단말기에서 유심과 e심이 함께 쓰이기 때문에 IMEI도 두 개가 생긴다. 그런데 두 개의 IMEI를 소비자가 직접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절차가 추가된 것은 단말기가 분실, 도난당했을 경우 부정 사용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유심과 e심이 함께 쓰이는 듀얼심 스마트폰의 경우 전화번호를 2개 개통할 수 있는데, 단말기 자급제 서비스에 IMEI를 등록해두면 스마트폰을 분실했을 때 전화번호 1개에 대해서만 분실신고를 하더라도 2개의 번호 모두 사용이 차단된다. 쉽게 말해 유심과 e심 명의자가 다르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한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듀얼심 활성화를 막는 조치다”라며 “일부 사용자들은 가족과 데이터 쉐어링을 하거나 가족 명의의 번호를 사용하기도 하고, 법인폰을 듀얼 번호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까지도 e심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e심을 지원하는 단말기도 극히 적다. 아이폰XS 이후 모델과 지난해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Z폴드4·플립4뿐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70~80%를 점유하고 있는데 e심 지원 단말기가 2종뿐인 셈이다.
통신 3사도 e심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8800원으로 동일하게 내놨는데, 소량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모회선을 쉐어링하는 정도의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e심 요금제를 내놓은 이후로 추가적인 요금제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e심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주니퍼리서치는 e심 시장이 올해 47억달러(약 5조8000억원)에서 4년 후 4배 이상 증가한 163억달러(약 20조원)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e심을 내장한 스마트폰도 올해 9억8600만대에서 35억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도 e심 탑재 스마트폰이 2022년 5억개 이상, 2025년 24억개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지난해 애플은 아이폰14 미국 모델에선 e심만 쓸 수 있도록 SIM 트레이를 제거했다. 애플은 e심 전용 모델을 올해 유럽에서도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구글과 삼성과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e심 전용 스마트폰을 늘릴 것으로 쥬니퍼리서치는 전망했다. e심 전용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e심 사용이 보편화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e심을 상용화할 당시 번호이동 절차를 간편하게 함으로써 통신사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이동통신 요금을 낮추는 등의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요금제와 단말기가 부족하고 규제가 추가되는 등의 상황으로 e심 사용은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통신 시장이 글로벌 동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e심이 듀얼 번호로만 활용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라며 “e심이 서브 회선이 아닌 메인 회선으로도 사용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e심 도입 취지에 맞게 통신비 인하 효과까지 생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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