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동관 vs HD현대 정기선, STX중공업 인수戰 승부에 촉각
● 선박용 엔진 기술 核 ‘STX중공업’
● 엔진사업부 없는 한화에 매력적
● HD현대, 기존 엔진사업부와 시너지 기대
● 한화 김동관-현대 정기선 대결 구도
● 기업·업계 상황 볼 때 출혈경쟁 없을 듯
한화는 지난해 12월 16일 대우조선해양과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내용의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인수를 확정짓고 곧바로 STX중공업 인수까지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HD현대 역시 지난해 12월 26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사명을 변경하고 사업부문별 핵심 사업 비전을 밝힘과 동시에 진행하는 첫 인수 건이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수전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두 그룹의 3세대가 처음 맞붙은 것도 업계 관심이 고조되는 이유다. 김동관(40) 한화솔루션 부회장과 정기선(41) HD현대 사장은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 김 부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성공적으로 보좌한 데 이어 이번 STX중공업 인수전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기선 HD현대 사장도 2021년 11월 취임 이후 지난해 경영 일선에 적극 나선 가운데 이번 STX중공업 인수도 직접 챙기는 모습이다.
엔진 기술에 눈독
STX중공업은 1976년 설립된 쌍용중기를 모태로 한다. 1980년대 디젤엔진 전문 생산업체로 전문성을 확보했고, 1990년대 기업공개 이후 공장 증설 등으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2001년 디젤엔진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STX엔파코를 설립하고, 저속 엔진용 부품 생산에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이후 2004년 옛 STX중공업을 설립해 독일 MBD사와 기술제휴로 선박 및 파워플랜트용 디젤 저속 엔진을 생산했고, 선박 엔진을 비롯해 선실 제조, 플랜트 건설 등에서 매출을 확대했다. 2013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 계열사를 합병해 지금의 STX중공업에 이르렀다.
한화가 STX중공업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대우조선해양과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 평가다. 대우조선해양은 자체 엔진사업부가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STX중공업에 선박용 엔진을 공급하는 최대 고객사다. 2022년 1~3분기 STX중공업 전체 매출 1321억 원 가운데 대우조선해양 매출만 359억 원, 점유율은 27.21%로 집계됐다. 만약 대우조선해양이 STX중공업을 인수할 경우 선박 제조 공정에 있어 수직계열화를 이룰 수 있다.
STX중공업이 갖춘 방산 부문 기술력도 한화가 탐낼 만한 요소다. STX중공업은 함정용 소형 엔진 기술을 갖춰 한화가 인수할 경우 그룹 내 방산사업 부문에 힘을 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것도 잠수함 등 군용 특수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화는 3사로부터 엔진을 공급받아 왔다. 내부적으로 일관된 체계를 갖추기 위해 STX중공업 인수에 나선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비용을 줄이는 등 시너지가 상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HD현대 역시 STX중공업 인수를 통한 시너지효과를 노린다. HD현대는 조선업계 빅3(HD현대·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가운데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엔진사업부를 갖추고 있다. HD현대는 선박용 저속 엔진 부문에서 글로벌 3대 기업으로 꼽히는데 STX중공업까지 인수할 경우 대형 엔진부터 중소형 엔진까지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기존 엔진사업부가 있는데도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그룹 내 잉여 역량을 활용해 선박 수주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라며 "엔진사업부 증설에 그룹 내 니즈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달라진 해운업계 분위기도 한몫했다.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정에 따라 글로벌 해운사들은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70% 줄여야 한다. 당장 올해 1월부터 해운사들은 IMO 규정에 따라 선박탄소집약도지수부터 제출해야 한다. 탄소 배출 효율 기준에 따라 각 선박을 A~E 등급으로 나누는데 IMO는 C등급 이상을 권고한다. E등급은 1년 이내, D등급은 3년 이내로 C등급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이 기준은 2050년까지 매년 높아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에 탄소 배출량을 줄일 액화천연가스(LNG) 선박과 차세대 연료 엔진을 탑재한 선박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STX중공업은 IMO 2050년 환경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일찌감치 차세대 연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적합한 엔진을 개발하는 등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해 왔다. 앞서 STX중공업은 강화된 IMO 환경 규정에 따라 2020년 독일 MAN-ES사와 함께 G-Type(Green-Type) 선박 추진용 LPG 이중연료 엔진(LGIP) 개발 및 시운전에 성공한 바 있다.
향후 20여 년간 해운업계에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국내 조선사의 친환경 선박엔진 기술력은 기업 경쟁력과 직결될 전망이다. 한화와 HD현대 모두 STX중공업 인수로 글로벌 선박엔진 시장에서 영향력 확대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80년대생 MZ세대 승계자들 첫 대결
김 부회장은 엘리트 코스를 거친 후 그룹 안에서 착실하게 경영 수업을 받아 재계 모범생으로 불린다. 미국 세인트폴 고등학교와 하버드대 정치학과 졸업 후 2010년 한화에 입사했다.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거쳐 2020년 1월 한화솔루션 부사장에 올랐다. 현재 한화·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 부회장은 최근 2년 사이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 적극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는 모양새다. 지난해 5월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 등에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 5대 그룹 총수들과 함께했고,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한 당시에도 기업인 간담회에 한화그룹을 대표해 참석했다. 올해 불혹인 김 부회장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그룹을 이끌 차기 리더로서 '김동관 체제' 확립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10여 년간 경영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근 수년 사이 차세대 에너지 기술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느는 상황에서 김 부회장은 일찌감치 한화솔루션을 맡아 사세를 키워나갔다. 그 결과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3분기 태양광 모듈 판매 실적이 2020년 1월 통합법인 출범 이후 분기 기준 사상 최대인 매출 3조3657억 원, 영업이익 3484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40.4%, 영업이익은 95.3% 증가한 수치다. 또한 한화솔루션 내 큐셀 부문이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출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럽에서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높게 점쳐진다.
또한 김 부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해 승계 구도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그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동시에 흑자 전환을 해야 하는 과제도 동시에 떠안았다. 대우조선해양은 2021년 1조7500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3분기까지 1조23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해 당장 경영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한화의 STX중공업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STX중공업의 엔진사업부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한화의 STX중공업 인수가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한화는 현재 조선업계 스터디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면 STX중공업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전략을 짤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목적에서 인수전에 나선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두 회사 모두 무리하지 않을 것"
김동관 부회장보다 한 살 많은 정기선 HD현대 사장도 그룹을 이끄는 실질적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2년 정몽준 전 회장이 물러난 이후 19년간 이어졌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끝내고 2021년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라 오너 경영체제를 다시금 열었다.정 사장은 대일외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스탠퍼드대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근무하다가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복귀했다. 조선해양영업본부-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총괄부문장,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2021년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현재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사장,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HD현대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정 사장은 재계 MZ세대 리더로서 그룹 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사명을 현대중공업그룹에서 HD현대로 바꾸고, 외부에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눈길을 끈다. 그는 1월 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통신(IT) 전시회 'CES 2023'의 HD현대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직접 연단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정 사장은 새로운 기업 비전으로 오션 트랜스포메이션(Ocean Transformation)을 제시했다. 그는 "HD현대는 퓨처빌더(Future Builder)로서 바다의 근본적 대전환, 즉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인류 영역의 역사적 확장과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성장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HD현대는 조선·해양, 에너지, 산업기계 기술력을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안전하게 운송 및 활용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STX중공업 인수전에 HD현대가 과잉 경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정 부회장이 CES 2023에서 한 발언 때문.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수 경쟁에서 이길 자신 있느냐"는 질문에 "예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인수 때도 그랬고, 우리가 생각하는 시너지가 많은 회사는 그것에 대한 페어 밸류(fair value·적정 가치)를 많이 쳐줄 수 있고, 시너지가 적은 회사는 페어 밸류를 적게 쳐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페어 밸류를 낼 것"이라며 "자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조선업계가 코로나19 회복세에 힘입은 수주량 증가로 호황을 누렸지만 올해 들어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각 사가 수주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는 등 전망이 어두운 것도 STX중공업 인수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한화는 기존 방위산업에서 들어오는 선수금을 투입해 대우조선해양 M&A에 뛰어들었고, 12월 본계약 성사 후 계열사를 통한 자금 확충을 우려하는 투자자 시각도 있다. HD현대는 엔진사업부 역량 강화 차원에서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올해 조선업계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이 변수"라며 "따라서 양사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정 가격을 써낼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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