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연진아,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야"
기사내용 요약
오는 4월부터 청소년 대상 '잊힐권리' 시범 사업 기대감
청소년들 '디지털 주홍글씨', 아동인격권 수면 위로 부상할 듯
"공인 '디지털 신분 세탁'에 악용되거나 표현의 자유 억누를 수 있어" 지적도
법제도화 여부는 심도 있는 논의 필요
정부 시범 사업이 제2,3의 문동은 상처 치유 계기돼야
【서울=뉴시스】송혜리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연일 시청기록을 경신하며 국내·외서 화제다. 청소년 시절, 잔인한 방법으로 학교폭력을 당한 한 여성이 가해자들에 통쾌하게 복수한다는 줄거리다. 가해자 박연진은 피해자 문동은의 몸 여기저기 화상 자국을 남기는 참혹한 폭력을 저질렀다.
드라마 속 초기 배경인 2000년대나 지금이나 학교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잊을만 하면 쏟아지는 학교폭력 관련 뉴스엔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영상과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는 내용들이 적지않다.
문동은이 지금과 같은 시대에 학교폭력을 당했다면 박연진은 피해자의 영상과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하고 협박했을 지도 모른다. 또 문동은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당시 게시물에 고통스러워하며, 2차 가해 속에서 살았을 지 모른다. 드라마 속 문동은의 지울 수 없었던 온몸 화상 흉터처럼...
정부가 올해 '잊힐 권리'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더 글로리' 드라마의 줄거리가 오버랩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오는 4월부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들이 올린 게시물을 삭제 또는 숨김 처리해 주는'잊힐 권리'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
지원 대상은 온라인 게시물에 포함된 개인정보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아동·청소년이다. 삭제할 수 있는 게시물은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게시한 글과 사진, 영상이다.
본인이 올린 글을 제3자 타인이 링크하거나 복제해서 다른 게시판에 올려진 글도 지울 수 있다. 개인정보위는 향후 제3자가 올린 아동·청소년에 관한 비방·비난 등 부정적 게시물도 삭제할 수 있도록 지원 대상 게시물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잊힐 권리'는 개인이 온라인에 올려진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삭제 또는 숨길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한번 온라인 올려진 게시물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쉽게 공유되고 퍼날라지기 때문에 정작 본인이 지우려 해도 쉽게 지울 수 없다. 과거에 별 생각 없이 본인이 올렸던 글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 자신을 평생 따라다니는 '디지털 주홍글씨'나 다름없다. '잊힐 권리' 필요성이 대두된 이유다.
이미 '잊힐 권리'를 법제화 한 곳도 있다. 유럽은 2012년 개인정보보호법(GDPR)으로 이를 보장했고 미국, 중국도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를 민감 정보로 별도 처리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나마 '잊힐 권리' 시범 사업에 착수한다는 소식이 더 없이 반갑다. 원치 않은 내 정보가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 다녀 회생의 기회를 박탈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학창 시절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혹은 철 모르던 시절 올렸던 게시물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았던 사람들이 한없이 이런 서비스를 기대했을 법하다.
'잊힐 권리'가 아동·청소년들의 정보 인격권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일이다.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부모에 의해 온라인에 올려진 게시물에 올려지는 게 합당하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2021년 만 0~11세 자녀를 둔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6.1%의 부모가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게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아동의 나체 영상, 먹고 울고, 기어다니는 영상도 있다. 당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나이가 되면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배우 올리비아 핫세가 10대 시절 속아서 아동 착취를 당했다며 '로미오와 줄리엣' 제작사를 상대로 6000억원대 천문학적 소송을 제기한 것도 과거와는 달라진 아동·청소년 인격권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잊힐 권리'를 법제화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유력 정치인 등 공인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 이력을 삭제하는 이른바 '디지털 신분세탁'에 악용되거나 사회 전반에 걸쳐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 수도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선 이용자들의 과도한 정보 삭제 요구가 빅데이터 산업을 저해할 수 있다. '잊힐 권리'가 개인정보보호법, 명예훼손법, 초상권 등 기존 법률에 이미 반영돼 있어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잊힐 권리' 시범사업에 나선 건 고무적이지만 그 대상 범위를 전면 확대하거나 법제화하려면 사회적으로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각계 사정이 어떻든 시범 사업은 드디어 시작된다. 이번 시범사업이 '더 글로리' 속 문동은의 흉터처럼 우리 청소년들의 마음속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하고 그들의 인격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첫발이 되길 기대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chew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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