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을 안다는 것[꼬다리]
서연은 차분한 사람이다. 숲이나 천변, 공원, 고궁 같은 곳을 좋아한다. 가구를 최소화한 ‘미니멀리즘’으로 꾸민 거실엔 잡동사니가 없다. 올해로 스물두 살이다. 취미는 홈베이킹과 자전거 산책이다.
성아는 활동적이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흔들어 재끼고 뒤집어 놓는”다. 목소리도 시원시원하다. 애창곡은 거미의 ‘어른 아이’다. 재활스포츠를 공부하는 스물다섯 살 성아는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의학드라마에 심장이 뛴다.
취향도 성격도 다른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은 의도치 않은 임신으로 10대 후반에 아이를 낳은 청소년 한 부모다. 서연의 딸은 네 살이고 성아의 두 아들은 여섯 살, 두 살이다. 경향신문 송년기획 <나, 어린 엄마>를 취재하면서 그들을 만났다. ‘서연’과 ‘성아’는 가명이다.
두 사람은 가파른 삶 위에서 계속 넘어졌다. 그들 앞에 많은 사람이 눈을 흘겼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이었는지 알아채는 대신 그저 손가락질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색안경도 악의도 없었다. 주로 서연과 종일 붙어 있던 직장 같은 팀 동료들이나, 성아의 간호조무사 학원 같은 반 이모들이 그랬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까. 짐작 가는 건 있다. 어쩌면 그건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기자로서, 또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가장 자주 직면했던 주제일지도 모른다.
1년 전쯤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의 1주기 기사를 썼다. 변 하사를 알고 지낸 이들의 기억을 수집했다. ‘절친’ 김씨가 해준 말이 아직도 또렷하다. “희수가 커밍아웃했을 때요? 별생각 없었어요. 똑같은 사람인데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아 그래? 게임이나 하자, 이랬죠….” 그전까지 김씨는 성소수자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편견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커밍아웃’이 오랜 우정을 흔들진 못했다.
봄에는 울산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이야기를 썼다. 어른들은 시끌시끌했지만, 한국 초등학생들은 매일 아프간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와 신나게 놀았다. 고등학생들도 점심시간이면 아프간 동급생들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갔다. 두 나라 학생들은 섞여 지냈다. 작고한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의 강한 의지였다고 한다.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타인의 구체적인 삶을 아는지 모르는지가 때로 아주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함께 밥을 먹고 게임을 하며 공을 차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온라인 기사 댓글창의 살벌한 얼굴들과 조금 다른 듯하다.
물론 아직 잘 모르겠다. 서로를 구체적인 사람으로 이해하는 일에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할까.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건 뭘까. 명쾌한 답이 나올 문제인지조차 가늠이 안 된다. 이럴 땐 직업윤리 뒤로 도망쳐본다. 판단할 시간에 사례 하나를 더 내놓는다. 다음은 <나, 어린 엄마>의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야 내 얘기도 좀 해주지 ㅋㅋㅋ. 앞으로 넘어야 할 산 많고 깨부숴야 할 벽 많겠지만 같이 힘내자. 멋지다 내 친구.”
조해람 정책사회부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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