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조련사’ 판즈베던 얍으로 불러주세요…엄격하지만 인간적으로”
지난 12~13일 정기연주회로 첫 만남
“세계 최고 수준 악단 도약 가능성 봤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편하게 ‘얍’이라고 불러주세요.”
‘오케스트라 조련사’로 불린다. 엄격한 통제와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세계 최고의 악단을 이끌었다. 미국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지휘자, 뉴욕필의 수장인 야프 판 즈베던(63)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차기 음악감독이 한국에 친근한 첫 인사를 건넸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서 동양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제가) 한국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서울시향과 함께 작업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개인적으로 한국인 친구들도 많은데 서울에 온 것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판즈베던은 지난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향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특히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 재학 시절 그의 은사인 강효(78) 교수를 그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교사’라고 불렀다 “어떤 선생님보다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판즈베던 감독의 명성은 자자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열아홉 살에 빈필, 베를린필과 함께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됐다. 홍콩필하모닉을 10년 만에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끌어올렸고, 미국 댈러스 심포니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타이틀을 안겼다.
판즈베던 감독의 공식 임기는 내년 1월 시작이나, 지난 12~13일 정기연주회를 통해 서울시향의 첫 지휘를 맡았다. 오는 4월부턴 새 단원 선발에 참여하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그는 “서울시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 서울시향과 함께 하는 여정에 무척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판즈베던 감독의 임명은 그간 침체됐던 서울시향의 긴장감을 높였다. 몇몇 단원들은 그는 “몇몇 단원들이 나를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단원들을 강행군 시킨다며 클래식 계의 제 평판은 터프한 편이다”라고 했다.
“오케스트라가 무대에서 90%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110%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주자와 지휘자가 무대 위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수죠.”
완성도 높은 무대를 위해 무대 아래 치열한 연습을 강조하면서도, 그는 ”가족같은 유대감“과 ”민주적 악단“을 지향한다.
그는 “오케스트라 내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며 “우리는 무대 위에서 하나의 가족으로서 연주하고, 단원들의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휘를 처음 시작한 뒤 여러 악단에서 지휘했지만 음악감독으로서 단 한 명의 단원도 해고한 적이 없습니다. 음악감독의 임무는 단원 모두가 더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때로는 엄격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 감정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두가 더 나은 연주자 될 수 있도록 하는 리더십입니다.”
판즈베던 감독은 그러면서 “연주자들은 연주자이기 전에 가족들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개별 연주자들이 어떤 상황인지 세심히 살필 마음이 지휘자에게 필요하다. 단원들을 하나하나 인간적으로 알아가겠다”고 밝혔다.
신임 감독과 만난 단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이사도 “감독님이 엄격하다고 해서 단원들이 걱정을 좀 한 한 것 같은데, 연주 후 힘은 들었지만 감사하고 행복했다는 얘기가 많았다”면서 “연주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상의 음악을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판즈베던 감독은 오는 4월 입국해 신입 단원 선발을 주관하며 본격적으로 서울시향을 꾸리게 된다. 내년 6월엔 홍콩필, 내년 말엔 뉴욕필 음악감독직도 그만두기에 이후부터는 온전히 서울시향에 집중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먼저 서울시향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을 먼저 갖게 될 것”이라며 “분위기가 매우 좋다.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램프란트 같은 무거운 색채, 반 고흐의 화려한 색채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임 감독의 생각이다. 특히 서울시향과는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엔그린’, ‘파르지팔’ 등 바그너의 오페라에도 집중하겠다는 생각을 비쳤다. 앞서 그는 홍콩필하모닉과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음반으로 발매,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브루크너 교향곡도 1년에 최소 한 곡은 연주할 계획이다. “말러가 신을 찾으려고 했던 작곡가였다면, 브루크너는 신을 발견한 작곡가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곡가이기도 하고요.”
판즈베던 감독은 한국의 재능있는 작곡가를 통해 창작곡도 발굴할 계획이다. 특히 “프로그램의 30%는 신곡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욕필에서도 2주에 한 번씩 신곡을 초연하고 있다. 특히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만든 정재일을 언급, ‘환상적인 작곡가’라고 말했다. “반드시 함께 꼭 작업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울시향이 그간 이어온 다양한 사회 공헌 사업은 신임 감독의 지향점과도 잘 맞는다. 그는 자폐아를 돕는 ‘파파게노 재단’을 아내와 함께 설립해 운영 중이다. 그도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자녀가 있다. 재단에는 대한민국 축구의 4강 신화를 일군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도 참여하고 있다.
판즈베던 감독은 한국에서도 장애아동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연주회도 1년에 한 차례씩 열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서울시향은 ‘행복한 음악회, 함께!’를 통해 자폐는 물론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미래 음악가’들의 성장을 돕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판즈베던 감독은 “사회적 약자들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연을 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판즈베던 감독의 본격적인 임기와 시작될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 건설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할 예정이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오찬에서도 그는 오는 2028년 열게 될 클래식 전용 공연장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공연장을 직접 개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 시장 역시 콘서트홀 최초 공연은 판즈베던 감독이 맡아주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오스모 벤스케 전 음악감독의 낙상 사고로 갑작스럽게 ‘대타 지휘자’로 서울시향의 2023년 첫 정기연주회에 서게 된 판즈베던 감독은 9일간 바쁜 일정을 보냈다. 지난 9일 입국해 사흘간의 리허설 이후 두 번의 공연을 마쳤고, 한국에서의 첫 공식 언론 간담회 직후엔 홍콩 공연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오는 4월 다시 입국해 서울시향 단원을 선발하고, 7, 11, 12월엔 차기 음악감독 자격으로 서울시향을 지휘한다. 차이콥스키,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등을 레퍼토리로 준비하고 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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