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부서진 명동 노점상들 터전…“사유지라도 말이 되나” 반발

한성화교소학교, 리모델링 위해 노점상 강제 철거
상인들 “합의 없이 임의 철거가 가능한가” 반발
중구청 “합법 상점이라 볼 수 없어. 자릿세도 벌금”

서울 중구 명동 한성화교소학교 인근 도로에 지난 16일 철거된 노점 잔해물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사유지더라도 충분히 말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다 때려 부수는 법이 세상에 어딨나요”

떡볶이 명소로 유명했던 가게를 비롯 서울 중구 명동에 있던 7개의 노점들이 심야에 기습 철거돼 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명동 거리 초입에 있는 한성화교소학교 인근 골목에서 중구청 공무원 30여명과 작업자들이 골목에 마구잡이로 널브러진 판자와 식기구, 식자재 등을 정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50여m 거리에 쌓인 폐기물은 5톤 트럭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다. 이날 나온 폐기물은 20톤이 넘었다. 노점상들은 이를 망연자실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 골목에서 길게는 50년까지 자리 잡았던 노점들의 잔해물로, 전날 새벽 1시쯤 한성소학교 측 리모델링 업체가 강제 철거했다. 이 학교는 철거된 7개의 노점들 바로 뒤에 있는 건물 소유주로, 건물 리모델링을 위해 이 노점들을 철거했다고 한다.

중구청 등에 따르면 한성소학교 측은 4년여 전부터 학교 부지 내 건물 두 채를 리모델링하려 했지만 건물 뒤편 벽면에 노점상 7곳이 맞닿은 상태로 영업을 해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노점상들은 학교 부지 일부와 명동4길 일대 도로 일부를 무단 점유해 매년 5000만원가량의 도로 변상금을 납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2시쯤 정리는 마무리돼 골목은 깨끗해졌으나 기존에 자리했던 상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철거된 노점상 자리에는 철제로 된 높은 회색 울타리가 세워졌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한성화교소학교 인근 도로에 쌓였던 노점 잔해물들이 모두 치워지고 높은 회색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김수연 기자

 
철거 직전까지만 해도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던 노점상들은 허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서 수십년간 장사를 해왔다는 김모씨는 “평생을 일궈온 것들이 하룻밤 사이 사라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노점 측은 “학교나 구청으로부터 철거 요청을 받은 적은 없고, 학교 리모델링 사설 업체에서 가게 쪽으로 건물 입구를 낸다고 철거하라는 얘기만 들었다”며 “구체적으로 철거 시기는 조율된 적도 없다”고 전했다.

반면 학교 측은 “수년간 자진 철거하라고 통보했고, 8개월 전부터는 구체적으로 철거 요청을 해왔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노점들이 무단으로 땅을 사유화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노점 측은 사전에 학교 측과 협의가 없었다며 학교와 리모델링 업체를 재물손괴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점상들은 “매년 5000만원에 달하는 자릿세를 내고 정당하게 장사를 해왔다”며 “우리가 학교에 보상금을 요구했다는데 이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구청에 따르면 이들의 영업은 불법으로, 상인들이 거론한 자릿세는 무단 점유한 곳에 부과되는 징벌적 의미의 행정 제재금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명동의 실명제 노점 외에는 합법적 운영의 상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노점과 학교 간 구체적인 임대차계약 사안은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청은 사유지에 관여하지 못한다”며 “학교 측에서 임의로 철거를 진행 후 도로에 잔해물을 그대로 놔둬 이를 정리하라는 내용의 원상회복명령을 내리고, 시민들 통행을 위해 정리에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성화교소학교는 1909년 9월 개교한 대만계 외국인 학교로, 우리나라에선 두 번째로 문을 연 화교학교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