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레이저로 번개 경로 바꿨다” 제우스가 된 과학자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1. 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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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중계탑에서 레이저 공중 발사
공기 데워 공중에 빈 공간 형성
번개를 레이저 지나간 길로 유도
우주발사장서 로켓 보호에 활용 기대
알프스산맥에 있는 124m 높이 통신중계탑 옆에서 녹색의 레이저를 하늘로 발사한 모습. 레이저가 공중에 번개가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RUMPF/Martin Stollberg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神)인 제우스는 천둥번개를 자유자재로 다뤄 모든 신과 인간을 굴복시켰다. 과학자들이 제우스의 반열에 올랐다. 레이저로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를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오헬리엉 아우아르(Aurélien Houard) 박사와 스위스 제네바대의 장-피에르 볼프(Jean-Pierre Wolf) 교수 연구진은 지난 1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에 “알프스산맥의 통신중계탑에서 레이저를 공중으로 쏘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밝혔다.

레이저 피뢰침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스 크레테대의 스텔리오스 초르차키스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20년 넘는 과학자들의 노력 끝에 이룬 엄청난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논문에는 과학자 28명이 이름을 올렸다.

◇공중에 번개 지나갈 길 만들어

구름 속의 얼음 입자가 마찰하면 전자가 이동한다. 이러면 한쪽은 (+)전기, 다른 쪽은 (-)전기를 띤다. 이로 인해 전압 차가 발생한다. 여름철에 자주 일어나는 낙뢰(落雷)는 두꺼운 구름에서 전기를 띤 입자가 땅으로 떨어져 전기를 방출하는 현상이다. 번쩍이는 번개와 천둥소리, 소나기와 우박을 동반한다. 낙뢰가 지나가는 곳 온도는 태양 표면보다 4배나 뜨거운 2만7000도나 돼 사람이 맞으면 80%가 즉사한다.

1752년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은 낙뢰 피해를 막는 피뢰침을 발명했다. 건물 꼭대기에 뾰족한 금속봉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전기 입자를 땅으로 연결된 전선으로 유도하는 원리이다.

레이저도 피뢰침이 될 수 있다. 레이저는 하나의 파장을 가진 빛이 직선으로 이동하는 현상으로, 에너지를 한곳에 모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레이저를 공중에 쏘면 공기가 데워지고 밀도가 감소해 번개가 그쪽으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우아르 박사는 “레이저로 공기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샌티스산에 있는 124m 높이 통신중계탑 옆에 1000조분의 1초 간격으로 빛을 쏘는 펨토초레이저 발생장치를 설치했다. 이 중계탑은 연중 100회 이상 번개를 맞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6시간 낙뢰가 발생해 번개가 15번 내리쳤다. 이중 4번은 레이저를 가동할 때 발생했다. 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보면 번개가 가지처럼 갈라지는 평소 모습과 달리 레이저를 따라 직선으로 이동했다. 레이저 피뢰침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악천후 속 우주로켓 발사에 도움

이전에도 2004년 미국 뉴멕시코와 2011년 싱가포르에서 레이저 피뢰침 실험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연구진은 이전에는 1초에 10번이나 그보다 적은 횟수로 레이저를 발사했지만 이번에는 1000번이나 발사해 불안정한 대기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번개가 지나갈 길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장소이다. 아우아르 박사는 “우리는 번개가 늘 같은 곳에 내리치는 특별한 장소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지난 5년 동안 400만유로(한화 54억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의 성과이다. 이번 실험을 위해 연구진은 곤돌라로 레이저 발생장치 부품을 산으로 옮겨 현장에서 다시 조립했다. 또 레어지 발생장치를 둘 건물을 짓기 위해 스위스에서 가장 큰 헬리콥터를 동원해 자재를 날랐다.

레이저 피뢰침은 국가 주요 인프라를 낙뢰 피해로부터 예방할 수 있다. 레이저는 기존 금속제 피뢰침보다 두 배나 넓은 지역을 번개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저렴한 금속제 피뢰침과 레이저를 함께 쓰면 피해 예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공중으로 레이저를 발사한 모습. 레이저가 공중에 번개가 지나갈 길을 만들어 유도했다./RUMPF/Martin Stollberg

이번에는 통신중계탑 옆에서 번개가 레이저가 만든 직선경로로 이동하는 실험만 했지만, 앞으로는 번개를 중요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피뢰침으로 유도할 계획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레이저 피뢰침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보다 훨씬 고가의 장비를 보호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조원이 들어가는 우주발사체가 한 예이다. 아우아르 박사는 프랑스령 기아나에 있는 유럽 우주발사장에서 아리안 로켓을 보호하는 레이저 피뢰침을 세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일본의 H2A 로켓이나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도 번개가 치는 바람에 발사가 연기된 바 있다.

참고자료

Nature Photonics, DOI: https://doi.org/10.1038/s41566-022-0113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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