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환수위한 기부 한번도 줄인 적 없죠"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2023. 1.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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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키는 지갑' 자처한 구기향 라이엇게임즈 총괄
석가삼존도 등 6점 회수 이끌어내
고궁 관리·왕실유물 보존도 지원
연간 기부액 5억서 현재는 8억
관련 예산도 일체 줄어든 적 없어
"많은 기업이 사회환원 욕심내길"
구기향 라이엇게임즈 총괄
[서울경제]

“문화재 환수를 하다 보면 급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정부 예산으로 처리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SOS가 오죠. 이럴 때는 최대한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진행해 결과를 알려줍니다. 국외 문화재 환수 담당자들에게 우리는 믿을 만하고 빠르게 열리는 돈주머니 같은 존재인 셈이죠.”

드물게 민간 차원의 국외 문화재 지원 사업을 기획한 구기향(43·사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사회환원사업 총괄은 17일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지금까지 문화 지원 사업을 위한 기부를 하면서 금액을 한 번도 줄인 적이 없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구 총괄은 미국계 게임사 라이엇게임즈 한국법인의 사회 환원 활동을 기획한 주역이다. 11년 동안 ‘석가삼존도’와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등 6건의 국외 문화재가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외에 고궁 관리, 무형문화재, 조선시대 왕실 유물 보존 처리 등을 지원해 2019년에는 대한민국봉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문화재 지원 사업에 뛰어든 것은 입사 첫해인 2012년이다. 당시 오진호 대표가 연탄 기부나 배달, 김장 봉사와 같은 뻔한 활동이 아닌 라이엇만의 색깔을 담은 사회 환원 방법을 찾아보라는 특명을 내렸다.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뜻밖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남편이었다. 구 총괄은 “어느 날 출근하려는데 남편이 갑자기 ‘문화재 같은 것은 안 되냐’고 했다. 모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문화재 아니냐는 뜻이었다”며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며 한 귀로 흘렸는데 깊이 생각해보니 그럴 듯했다. 그때부터 파고들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구 총괄은 가장 현대적인 문화가 게임이라고 말한다. 게임은 놀이 중 하나이고 놀이의 뿌리는 문화라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게임 참여자들이 스스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또 다른 벽이었다. 장벽을 깰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 환원이었다. 그는 “국외 문화재 환수는 전 국민에게 혜택을 줄 뿐 아니라 게임 참여자에게도 내가 낸 돈으로 우리 문화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면서 사회적 호감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구기향 라이엇게임즈 총괄

어려운 점도 있었다. 문화재 전문가가 아니니 문화재청과 같이 이 분야를 잘 아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하지만 한국도 아닌 외국 회사가 뜬금없이 문화재 환수를 지원하겠다고 하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끈질긴 설득뿐이었다. 구 총괄은 “환수 관계자를 만났을 때 1시간만 만나기로 했는데 끝나고 보니 2시간을 붙잡고 있었더라”며 “이로 인해 이 관계자는 대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열차 편을 놓쳐 표를 새로 끊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문화재 환수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경매에 나오지 않는 문화재는 길고 험난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구 총괄은 “환수 협상을 벌이던 상대방이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며 “환수는 마치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관련 예산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처음 5억 원에서 시작된 연간 기부액은 이제 8억 원에 이르고 있다. 지난 11년간 기부액은 항상 늘었다. 2013년부터는 이 중 일정 금액을 문화재 환수를 위해 지정 기탁을 하게 됐다. 이렇게 모인 환수 지원금이 누적 20억 원, 사용되고 남은 금액은 10억 원이 넘는다. 국외 문화재를 환수할 종잣돈이 마련된 셈이다. 스스로 환수를 위한 ‘믿을 만하고 신속한 돈주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다.

구 총괄은 많은 기업들이 사회 환원 사업을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 구색 맞추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회사와 상관없는 사업,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 생색이 나지 않는 분야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된 사회 환원 활동이야말로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 총괄은 “사회 환원을 잘하는 것은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더 많은 욕심을 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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