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비비고, ‘14억 병’ 진로 이즈 백…히트템 무엇이 달랐나
곰표 콜라보 제품·비비고 만두·진로 등 히트템 빚어낸 주역들에게 물었다
트렌드 올라탄 마케팅도 주목…해외시장까지 개척한 저력은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대한민국 유통가를 흔든 아이템들이 있다. 히트를 한 아이템은 기업의 이미지를 바꾸고, 새로운 마케팅 트렌드를 만든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브랜드뿐 아니라 한국을 알리는 첨병 역할까지 해낸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획기적인 아이템은 기업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나아가 기업의 아이덴티티까지 만들어낸다. 이렇게 저력을 발휘한 아이템들을 '히트템'이라 부른다. 유통가에서 존재감을 뽐낸 아이템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지금의 성적은 어떨까. 히트템을 만들어낸 기업들의 다음 과제는 뭘까. 과연 이 히트템들은 2023년, 어떤 저력을 발휘할까.
기업을 회춘시킨 콜라보 아이템
최근 몇 년간 유통가를 주목했다면, '젊어진' 장수기업들이 관측됐을 것이다. 대표적인 도구는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이하 콜라보)'. 60년이 넘은 기업 대한제분이 콜라보 1순위 기업으로 꼽히는 힙한 기업이 되기까지, 그 중심에는 마스코트 '표곰이'가 있었다. '곰표'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온라인 플래그십 스토어 등을 통해 알리며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MZ세대를 겨냥하는 방법으로 표곰이를 활용한 콜라보라는 답안을 내놨고, 그것은 정답이 됐다.
곰표의 회춘을 이끈 사람은 김익규 대한제분 마케팅 상무다. 대한제분은 역사를 지닌 장수 브랜드지만 B2B를 주력으로 하는 밀가루 브랜드이기에 젊은 세대에게 인식되기는 어려웠다. 젊은 세대를 잡을 방법을 고민하던 김 상무는 오래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리브랜딩에 나섰고, 백곰을 캐릭터로 만들어 활용하는 길을 택했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 밀가루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로고화됐던 백곰, 70대를 바라보던 노구의 표곰이는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힙한 스타 곰이 됐다.
시장에서 많은 콜라보 제품들이 등장과 퇴장을 빠르게 반복할 때, 곰표의 콜라보가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DNA에 기반한 제품을 내놓았다는 데 있었다. 밀가루의 하얀 이미지에 맞춘 쿠션과 핸드크림, 밀가루 포대의 푸근한 비주얼을 활용한 팝콘과 나초 제품, 백곰의 덩치를 본뜬 패딩이 시장을 흔들었다. 실제로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밀맥주와 막걸리까지, 원조 '밀가루'와의 연관성을 녹인 곰표의 콜라보에 소비자들은 품절 대란을 만들어내며 환호했다. 인기는 여전하다. 출시 사흘 만에 초도 물량 10만 개가 모두 판매되면서 인기를 입증했던 곰표 밀맥주는 지금도 CU의 히트상품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성공적인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린 대한제분에도 과제는 남았다. 콜라보 제품에 라이선스를 빌려준 형태였기 때문에 유의미한 매출 변화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대한제분은 국수와 치킨너겟 등 밀가루를 활용한 제품들을 내놓고, 식혜 명인과 함께 밀식혜 등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확보한 팬덤을 바탕으로 매출 확대뿐만 아니라 새로운 컬처 브랜드로의 도약을 시작하는 것이 곰표와 표곰이의 목표다. 골프공과 조끼 등을 골프존 쇼핑몰과 곰표하우스에서 판매하면서 소비자들과 라이프 브랜드로서의 접점을 넓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뉴트로 트렌드로 시작해 '헬시 플레저'까지
뉴트로(New+Retro)의 성공 방정식이 통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류회사인 하이트진로가 보여줬다. 향수를 자극하는 두꺼비와 투명한 병을 콘셉트로 내세워 2019년 출시된 진로는 하이트진로의 대표적인 히트 아이템으로 꼽힌다. 과거 디자인을 복원해 라벨 사이즈, 병 모양, 병 색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돌아온 진로는, 본명보다 '이즈 백'이라는 수식어로 불리고 있다. '진로 이즈 백'은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무려 14억 병이 팔렸다.
제품 개발에는 전사가 참여하지만, 아이디어를 조율하면서 의사결정을 만들어나가는 곳은 브랜드팀. 그중에서도 소주와 관련된 브랜드를 총괄하는 부서는 소주브랜드팀이다. 주종의 트렌드를 살피며 제품을 개발하고, 회의실에서 직접 시음을 하고, 설문을 통해 맛과 만족도를 테스트하면서 제품화 가능성을 따져 본다. 술을 마시는 TPO(시간, 장소, 상황)도 중요하기에 때와 장소, 상황에 맞춰 시음해 보기도 한다. 주류 특성상 영업과 마케팅은 연장선상에 있다. 경쟁사의 제품을 마시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왜 그것을 마시는지, 맛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지 솔직하게 묻는다.
이렇게 소주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에 윤호섭 하이트진로 소주브랜드팀장이 있다. 하이트진로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모두 경험한 윤 팀장은 "모든 술이 다 애착이 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술은 진로다. 녹색병 일색이었던 소주 시장에 스카이블루 색상의 진로가 소비되고 확산될 때의 황홀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자몽에이슬(2015), 아이셔에이슬(2020) 등 하이트진로의 여러 인기 아이템을 담당한 그에게도 진로는 특별한 술이다.
캐릭터의 모델화는 근엄한 표정의 두꺼비를 미소 짓는 두꺼비로 바꾸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레트로한 디자인, '진로 이즈 백'이라는 직관적인 카피, 패션·통신·금융 등 영역을 넘나드는 콜라보, MZ세대를 겨냥한 두껍상회 등이 진로의 인기를 그야말로 '돌아오게' 했다. 최초의 굿즈였던 전용잔부터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시한 소주 디스펜서까지 완판을 기록하며 두꺼비의 괴력을 입증했다. 두꺼비와 함께 협업하려는 편의점 업계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두꺼비 캐릭터와 두껍상회는 진로소주의 이미지를 낡은 것에서 전통적인 것으로, 오래된 것에서 힙한 것으로 바꿔놓으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확립시켰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은 있지만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두꺼비 캐릭터 IP를 지원하면서 제품을 개발했고, 여러 콜라보를 통해 내세운 두꺼비 캐릭터를 통해 주류업계 마케팅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국을 순회하는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운영했던 두껍상회는 연내 다시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5년 차 진로 이즈 백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뉴트로 트렌드를 부흥시킨 진로 이즈 백은 건강을 중시하는 헬시 프레저 트렌드도 외면하지 않았다. 올해 99주년을 맞이한 하이트진로는 시사저널과 만난 1월9일 당류를 사용하지 않은 '제로 슈거' 콘셉트로 리뉴얼된 진로를 첫 출고했다. 16.5도였던 알코올 도수를 16도로 낮추고, 과당의 빈자리를 대체 감미료로 채워 비슷한 맛을 구현했다.
국내시장 접수하고 글로벌 시장 열어젖혀
'만두'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비비고'가 됐다는 사실은 곧 비비고 왕교자의 성공을 증명한다. 국내 만두 시장에서, 비비고를 만든 CJ제일제당은 45.9%의 압도적인 점유율(2022년 11월 기준)을 자랑한다. 올해는 비비고 왕교자가 출시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대중적이지만 값싼 인스턴트 제품으로 여겨졌던 만두에 대한 인식도 이 만두를 기점으로 바뀌었다. 비비고 만두는 20년 넘게 만두만 연구개발한 수석연구원을 중심으로 9명의 연구원이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만들어졌다.
씹는 맛과 풍미를 구현하기 위해 고기와 야채를 갈지 않고 깍둑썰기로 썰었다. 돼지고기의 조직감과 육즙을 살렸고, 그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왕교자 타입 만두를 구상했다. 개당 13g에 불과했던 기존 만두는 35g의 큰 만두가 됐다. 임금에게 진상하던 해삼 모양의 만두, '미만두' 형태로 만들어진 이 만두는 출시 1년도 지나지 않아 만두 시장 1위 자리를 점령했다.
새로운 만두가 움직인 시장은 국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글로벌 스타였던 싸이를 모델로 삼아 식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문화권인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2019년 미국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컴퍼니 인수는 미국 내 유통망을 활용해 비비고 만두의 판매 채널을 대형마트와 중소형 슈퍼마켓까지 넓히는 기폭제가 됐다. 해외에서 'dumpling'이라고 표기돼 있던 만두의 이름을 'mandu'로 표기한 것도 비비고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만두는 비비고의 가장 중점 사업이다. 비비고 만두 매출은 2017년 5060억원에서 2020년 1조원을 돌파했다. 2021년 비비고 가공식품의 글로벌 연매출이 2조원을 넘어선 데에도 만두의 역할이 컸다. 비비고 브랜드그룹의 전체적인 전략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소비자가 비비고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설계하는 중심에 김숙진 비비고 브랜드그룹 경영 리더(그룹장)가 있다. 싸이를 모델로 기용한 비비고의 커뮤니케이션 전략부터 비비고 브랜드의 국내외 출시, 만두를 비롯한 냉동식품 사업을 담당하는 냉동혁신팀 사업, 신제품 개발 등을 맡으며 비비고라는 브랜드의 차별성을 만들어온 그다.
비비고를 알리는 데는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도 주효했다. 스스로 바이럴 마케팅에 나서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비비고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팝업스토어나 캠페인도 만두와 연동시켰다. 국내 수제 맥주 기업인 제주맥주와 함께 '도깨비 만두바'라는 이름의 팝업스토어를 열어 두 브랜드의 제품을 응용한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 프로농구팀인 LA 레이커스 스폰서십을 활용한 비비고 아레나 캠페인도 지난해 다시 진행했다. NBA 시즌에 맞춰 MZ세대가 선호하는 장소를 '비비고 아레나'로 운영하고, 스포츠 이벤트와 함께 비비고 브랜드와 제품을 체험시켰다.
비비고의 목표는 5년 안에 인터브랜드 선정 글로벌 100대 브랜드로 도약하는 것이다. 김숙진 그룹장은 "힙한 문화를 통해 체험과 인증샷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 코드가 맞는 브랜드로 비비고를 각인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 돈'을 내고 먹을 만한 퀄리티의 음식, 사진을 찍게 만드는 장소, Z세대의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파트너십 등을 통해 브랜드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비비고를 마트 브랜드, 가공식품 브랜드가 아닌 하나의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셰프 컬렉션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브랜드에 선망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한식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유럽 시장도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5월 영국 법인을 설립하면서 유럽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역시 선봉장은 만두. 유럽인들에게 친숙한 닭고기 만두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미 현지 식품업체들을 인수하면서 진출을 예고한 베트남에도 지난해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사업을 확대했다. 할랄 전용 생산동을 갖추고, 인도네시아 무이와 말레이시아 자킴 인증을 받아 할랄 시장 공략에도 나선다. 만두의 변신도 계속된다.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한 만두인 플랜테이블 만두는 여성과 3040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수출 국가도 유럽과 인도, 아프리카를 포함해 30개국으로 늘었다.
히트템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기업들
세상에 없던 아이템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성장 발판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상품은 군의관이 만든 수분 보충 음료 링티다. 링티는 재활의학과 의사 출신인 이원철 링티 대표가 특전사 군의관으로 복무할 당시 강도 높은 훈련으로 탈진한 병사들에게 수액을 공급할 방법을 고민하다 개발한 제품이다. 2017년 출시 이후 국내 음료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군을 개척해 나가며 누적 판매량 5000만 포를 넘겼다. 설립 첫해 1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링티는 연매출 360억원을 넘어선 회사로 성장했다. 링티는 기존 제품에 더해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전문의약품 출시도 추진할 예정이다. 경구수액의 글로벌 표준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미국 시장을 겨냥한 경구수액 제품인 아이브이2를 출시했다.
2020년 출시된 가히 멀티밤은 코리아테크라는 기업을 알리고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코리아테크의 뷰티 브랜드 가히는 출시 1년 반이 되지 않은 시점에 1400만 개 이상의 멀티밤 판매고를 올리면서 저력을 보여줬다. 코로나19 사태로 화장품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K뷰티는 끝물'이라는 인식이 나오는 와중에도 코리아테크 매출은 2020년 139억원에서 2021년 2513억원으로 20배가량 증가했고, 다른 화장품 업체의 멀티밤 제품 출시 러시까지 이끌면서 메가히트 제품의 영향력을 입증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PPL을 줄이고 소비자 참여형 광고인 가히 PPL 멀티버스 등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코리아테크는 가히 멀티밤이라는 히트템을 통해 유통과 마케팅에 치중하던 기업에서 개발 기업으로 본격적으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신제품 멀티밤과 함께 리필 키트를 내놓으면서 기능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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