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과 스쿨존을 넘어서야 도로 위 아이들이 안전하다
2019년 12월24일, 도로교통법 제12조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13이 개정되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등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안전 유의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를 죽거나 다치게 한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이다. 2019년 9월 김민식 군 사망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이른바 ‘민식이법’이다. 이 법이 제정된 지 3년이 지났다. 오는 3월에는 시행 3주년을 맞는다.
3년 동안 민식이법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는 양방향의 힘이 동시에 존재했다. 적지 않은 변화가 일었지만 동시에 그대로 머물거나 거꾸로 흐르려는 힘 또한 팽팽히 맞섰다.
민식이법 입법 당시부터 제기된 주된 비판의 논리는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이 ‘과도성’ 인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처벌 형량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한속도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어린이보호구역이라도 (사망 시) 3년 이상 징역은 너무 세다’가 전자, ‘아무리 어린이보호구역이라 해도 시속 30㎞는 너무 느리다’가 후자다.
전자 즉 과도한 처벌 형량은 시행 초기까지 가장 거셌던 비판 논리다. 시행 3주년을 채워가는 지금은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꽤 잠잠해졌다. “사망 시 무기징역! 상해 시 최대 15년!”을 강조하던 다수 유튜버들의 경고와는 달리, 실제 민식이법 적용 판례들에서 운전자들에게 내려진 형량이 예상보다 상당히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2년 동안 민식이법이 적용된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아동 치사상 1심 판결 173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8건에 불과했다.
한국법제연구원도 지난해 민식이법 입법영향분석 결과보고서를 내면서 민식이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13) 적용 전후로 가해 운전자에게 내려진 처벌 형량을 비교 분석한 내용을 밝혔다. 결과는 비슷했다. 민식이법 적용 이전이나 이후나 조사 대상 판례 중 59%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민식이법 적용 이후 가장 높은 형량은 징역 5년이었는데 사망 1명, 상해 2명이 발생한 사건이었다. 어린이가 사망했는데 무죄판결이 난 사건도 있었다. 상해 사고 가운데 가장 높은 형량은 징역 1년6개월 또는 벌금 1000만원이었다. 무면허에 신호 위반, 과속 운전자였다. 한국법제연구원은 민식이법 입법영향분석 결과보고서에서 “과실이나 치료비 등 합의, 피해자의 용서, 어린이의 돌발 행동 등 양형 요인이 충분히 고려되고 있다. 2019년 법 개정(민식이법)이 반드시 책임을 운전자에게만 넘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사망자 줄어
이렇게 첫 번째 과도성(처벌 형량)에 대한 공포는 누그러졌지만, 두 번째 과도성인 “아무리 그렇다 해도 24시간 내내 시속 30㎞는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은 여전히 거세다. 어린이보호구역 제한속도 30㎞/h는 2010년 7월 도로교통법 개정 때 법조문에 명시됐다. 오래된 규제이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가 민식이법 제정으로 그 구역에 과속 단속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하자 뒤늦게 운전자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사문화되어 있던 법 조항이 ‘과속 범칙금 고지서’와 같은 ‘실물 불청객’으로 나타나자 운전자들은 지자체·정부·국회·경찰 등에 민원을 제기하고 청원을 올렸다. 그런 ‘여론’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만들어지고 인수위 시절 계획을 거쳐 이번 정부 실제 ‘스쿨존 규제 완화’ 정책으로 실현되었다.
민식이법 시행 후 일정 시간이 흐르고 제기된 또 다른 비판 논리는 실효성에 관한 것이다. “민식이법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가 끊이지 않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다. 잃는 손해(운전자 편의)에 비해 얻는 실익(어린이 안전 확보)이 작다는 주장인데, 주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의 보합세를 그 근거로 든다. 이전에도 한 해 400~500건대였던 사고 건수가 민식이법 시행 이후에도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2021년에는 소폭 상승한 걸 보면(〈그림 1〉 참조) 말 많고 탈 많은 민식이법이 정작 별 효과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다만 사망자 수는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 이후 매우 줄었다(〈그림 2〉 참조). 코로나19로 인한 등교일수 감소가 통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부분 해제된 지난해에도 사망자 수는 더 늘지 않았다. 아직 공식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소식들을 종합하면 2022년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발생한 보행 어린이 사망사고는 총 3건(7월 경기 평택시 굴착기 사고, 10월 경남 창녕시 우회전 차량 사고, 12월 서울 청담동 음주운전 차량 사고)이다.
민식이법 이후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내 사망률이 비스쿨존에 비해서도 줄었다는 분석이 있다. 대학원에서 통계데이터 사이언스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한슬씨(약사·작가)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사망 건수/전체 사고 건수)을 스쿨존 안과 밖으로 구분해서 각각 구해보았다. 똑같은 건수의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했을 때, 어떤 이유에선지 2020년 이전에는 줄곧 스쿨존이 비스쿨존보다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런데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 이후 처음으로 그래프가 뒤집혔다. 스쿨존 내 사망률이 비스쿨존 내 사망률 아래로 떨어졌다. 운전자들이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 안에서 속도를 줄이고 안전운전 의무에 더 신경을 써서 스쿨존이 정말 법 취지대로 (예전보다는 더)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 되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씨는 “이런 식으로 드라이하게 데이터를 통해 정책의 효과를 파악하는 시도들이 있어야 운전자들이 좀 불편하더라도 ‘실제로 아이들이 덜 죽었구나, 덜 위험해졌구나’를 느끼면서 정책 순응도가 높아질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수 국민들은 점점 민식이법의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한국법제연구원은 민식이법에 대해 사후 입법영향평가를 벌이며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대국민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에서 제시된 항목 중 ‘민식이법 제정 이후 다른 사람들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운전할 때 안전운전에 더욱 주의하는 것처럼 보인다’에 국민 86.2%가 동의했다. 2020년과 2021년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여론 속의 여론’ 민식이법 인식 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했을 때에는 각각 74%, 65%가 동의했다. 또한 2022년 국민 74.7%가 ‘민식이법이 어린이 교통사고 처벌에 대한 형량을 높인 것에 찬성한다’라고 밝혔다. 2020년과 2021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스쿨존 내 가해 운전자 가중처벌에 대해 각각 68%, 67%가 찬성했다. 2020년, 2021년과 2022년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민식이법 시행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이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가 좀 더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안전 규제에 대한 순응도도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제도가 선행되고 인식 변화가 뒤따른, 흔치 않은 사례다.
하지만 이런 인식 변화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추가적 정책 변화로 이어지는 데까지 속도가 느리고 난관이 많다. 민식이법 제정 이후 3년 사이 스쿨존 및 통학로 안전 점검을 벌이고 개선책을 제안한다는 보도자료가 행정안전부, 경찰청, 각 시도교육청, 각 시군구 등에서 수시로 쏟아졌다. 하지만 점검만 해놓고 실제 개선이 실행되지 못한 위험지역이 아직 부지기수다.
지난해 12월2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이 대표적이다. 사고 당일 오후,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3학년 이동원 군(9)이 학교 후문 바로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던 차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난 장소는 오래전부터 학교와 학부모들이 위험을 인지하고 관계기관에 개선 요청을 해오던 곳이다. 폭이 좁은 경사로에 양방향으로 끊임없이 차량이 다니고 인도가 따로 없어서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구역이었다.
서울시교육청도 2019년 통학로 안전점검을 벌이면서 언북초 후문 앞 도로의 이런 문제를 발견했다. 보행로 설치 등의 의견을 실제 권한을 지닌 경찰과 구청 측에 전달했지만 개선안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구청 측은, 주민 설명회와 우편 설문조사 등을 실시해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는데 참여 주민 50명 중 48명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언북초 재학생은 1854명이다. 아무리 많은 어린이들의 통학 안전이 달린 문제라도 아직까지 ‘(성인) 주민 편의’ ‘(운전자) 통행 원활’ 같은 가치가 그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일이 빈번하다. 서울 시내 한 학부모는 “학생과 학부모 수백 명의 서명을 받아 위험한 통학로에 겨우 과속방지턱 등 안전시설을 추가해놓는 데 3년이 걸렸는데, 인근 주민 몇 명이 ‘과속방지턱 때문에 시끄럽다’는 민원을 내자 단 몇 개월 만에 다시 과속방지턱 높이를 깎아 평평하게 만들더라”라고 말했다. 안전 강화 쪽으로 개선이 신속히 이루어진 때는 그곳에서 어린이 사망사고가 발생한 직후뿐이다.
입법 목적을 다시 떠올린다면
반면 반대 방향으로의 ‘되치기’는 빠르고 강하다. 윤석열 정부가 스쿨존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힌 지난해 4월 이후 서울·인천·강원·대구·대전·광주 등 많은 지역에서 지자체와 경찰이 협력해 어린이보호구역 내 제한속도를 올리거나 주정차 금지를 완화하는 계획을 밝히고 곧바로 시범 운영 또는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특히 강원도가 가장 앞장섰다. 지난해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스쿨존 속도제한 완화를 ‘강원도 규제 혁신 1탄’으로 정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했다. 강원도 경찰청이 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스쿨존 규제 완화에 난색을 표하자 김 지사는 경찰 지원 관련 예산 중단으로 압박하면서까지 시행을 추진했다. 지난해 도내 22개 어린이보호구역의 제한속도를 종전보다 10㎞/h 올렸고, 올해에도 추가로 13개 구간에서 제한속도를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단속 건수와 민원, 교통량, 주민 여론 등을 고려해 위험성이 낮은 곳을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속도 상향이 적용된 어린이보호구역 중 ‘사고 다발 지역’인 곳도 섞여 있다(강릉 한솔초, 〈그림 3〉 참조).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강원도의 이런 스쿨존 속도제한 완화 사업을 ‘지역치안·생활안전 수요대응 특별교부세 공모사업’ 최우수 사업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8월 윤석열 정부는 ‘제1차 어린이 안전 종합계획(2022~2026)’을 발표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제로화’다. 로드맵이 가동된 첫해에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어린이 3명이 사망했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사망사고 5건이 더 발생했다(2022년 2월 제주, 5월 광주, 7월 김천, 10월 청주, 12월 서울 세곡동). 어린이보호구역 바깥이긴 하지만 대부분 등하굣길에 발생한 사고였다.
서울연구원 ‘어린이보호구역 강화에 따른 서울시 스쿨존 제도 운영 개선방안(2022년 5월)’은 실제 통학 동선과 스쿨존 지정 구역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별로 맞춤형 스쿨존을 적용하고, 학교 출입구 위치를 변경하거나 학교 부지 내 공간을 활용해 통학로로 이용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신해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아이들이 (보도·차도 미분리 도로인 경우가 많은)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걷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장은 통학로를 네덜란드 ‘보너르프(Woonerf)’ 사례처럼, “굳이 처벌 때문이 아니더라도 운전이 불편하기 때문에 도저히 속도를 내기가 힘든” 길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좁고 울퉁불퉁하고 중간에 회전교차로가 나오는 등 ‘자동차를 위한 인프라가 불편해서 보행자에게 안전한 길’을 의미한다.
이처럼 어린이 보행 안전을 위해 아직 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한국 사회는 지난 3년간 ‘민식이법’과 ‘스쿨존’ 테두리에 갇혀 좀체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구해야 할 답은 ‘민식이법이 옳은가 그른가, 스쿨존 제한속도는 적절한가 아닌가’를 넘어 ‘도로 위에서 아이들이 덜 죽고 덜 다치는 방법’인데 말이다. 3년 전 민식이법을 대표 발의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편을 합리적이고 차분하게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입법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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