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고무신을 정리하던 외팔의 수녀

조인원 기자 2023. 1. 18. 07: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사진사( 1929~ 1982)를 조망하는 사진전
서울 종로구에 새로 문을 연 뮤지엄한미 삼청이 개관 기념으로 열고 있는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 전시된 배상하의 '수녀 수산나'. 1962년 미사중인 한 성당 문앞에 고무신을 정리하는 외팔의 수녀 뒤로 맨발의 소녀가 지켜보고 있다. /사진가 배상하

수녀 한 명이 미사 중인 성당 입구에서 아이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가 배상하가 촬영한 1962년 대구 계산성당 모습의 이 사진에서 눈에 띄는 두 가지는 오른쪽 단발머리의 소녀의 맨발과 왼팔이 보이지 않는 수녀의 모습이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진을 두 가지로 구분했는데,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라 했다. 라틴 어 스투디움은 광고 사진이나 뉴스 사진처럼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게 표현된 것이다.

반면 푼크툼은 사진을 감상하는 개인마다 사적인 경험이 투영되어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으로 개인 앨범이나 역사적 사진에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말한다. 작가들의 예술 사진이나 사적 경험이 투영되는 사진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사진이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감상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사진이 사적인 경험이 반영되어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면 ‘찌른다’는 의미의 라틴어로 푼크툼으로 불렀다. 이 사진의 푼크툼은 바로 소녀의 맨발과 수녀의 왼팔이라고 하겠다.

아이들의 고무신을 정리할 게 뭐가 있나 싶겠지만,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안 된 헐벗고 가난했던 그 시절에도 우리 어른들은 이렇게 아이들에게 질서와 품위를 가르쳤다. 대구 매일신문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진들을 많이 남겼던 배상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종로구에 새로 문을 연 뮤지엄한미 삼청이 개관 기념으로 열고 있는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 전시중인 홍순태의 <갈치>. 1971년 제 1회 건축및 사진전람회의 금상 수상작품. 시장 좌판에 갈치를 사진가 홍순태는 에드워드 웨스턴 스타일로 조형미 있게 촬영했다./ 사진가 홍순태

한참을 꼬아 놓은 이건 뭘까? 갈치다. 사진가 홍순태가 1971년에 촬영했다. 개인 사진전이나 사진집을 포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진 관련 기록을 갖고 있는 홍순태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사진교육자이기도 했다.

홍순태는 사진에서 항상 조형미를 강조했고, 그를 따른 제자들은 사진의 구도나 형태, 톤과 색조 등을 강조하며 사진의 시각적 요소를 잊지 않았다. 이 작품은 1971년 ‘대한민국 건축 및 사진전람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피망이나 배추를 흑백사진으로 촬영해서 인간의 등이나 치마처럼 보여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의 사진들을 연상시킨다.

서울 종로구에 새로 문을 연 뮤지엄한미 삼청이 개관 기념으로 열고 있는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 전에 전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알려진 이홍경의 '여인의 초상', 1926년에 촬영된 것으로 100년 가까운 세월이 무색할 만큼 표정이 생생하다. /사진가 이홍경

낡은 앨범 속에 한복을 입은 여인은 활짝 웃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알려진 이홍경이 1926년에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한 귀퉁이 낡아서 떨어져 나가고 사진의 바탕지는 누렇게 변색하였지만 사진 속 여인의 표정은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생생하다. 마치 지하철이나 출근길 거리에서 한 번쯤 스친 얼굴 같다. 당시에 사진관에서 초상 사진을 촬영했다면 신여성이자 양반집 신분이었으리라.

오랫동안 우리나라 사진전문 전시와 자료수입, 연구를 주도했던 한미사진미술관이 20주년을 맞았다. 제약회사 한미가 20년간 사진에 쏟은 관심과 노력은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건물에 있던 한미사진미술관의 수많은 전시와 토론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다가 지난 연말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분관을 세우면서 뮤지엄한미 삼청의 개관 전시를 현재 열고 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가 그것인데, 1929년 광화문빌딩 2층에서 열린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부터 1982년 사진가 임응식의 <임응식 회고전>에 이르는 주요 연보를 재구성했다. 전시는 4월 16일까지.

사진= 뮤지엄한미 삼청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