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알 권리 또는 알려지지 않을 권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주말에 만난 지인분이 조만간 할아버지가 된다며 싱글벙글하셔서, 벌써 자녀가 장성하여 손주도 보시게 되니 얼마나 뿌듯하시냐 축하를 드렸다.
그랬더니 옆에서 다른 이가 손주가 아니라 손자라고 말을 거들었다.
어찌 아느냐 물었더니, 요새는 진단영상장치의 화질이 너무나 좋아서 의사가 말하지 않아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모든 의료기관의 비급여진료비는 각 의료기관 내부와 홈페이지 등에 공개돼 있으므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만난 지인분이 조만간 할아버지가 된다며 싱글벙글하셔서, 벌써 자녀가 장성하여 손주도 보시게 되니 얼마나 뿌듯하시냐 축하를 드렸다. 그랬더니 옆에서 다른 이가 손주가 아니라 손자라고 말을 거들었다. 어찌 아느냐 물었더니, 요새는 진단영상장치의 화질이 너무나 좋아서 의사가 말하지 않아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화질이 좋은 것도 있지만,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덕분이 크다.
바야흐로 빅데이터의 시대이다. 내가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통계프로그램을 사용할 때엔 데이터를 입력하는 데도 '경제성'을 고려해야 했다. 연산처리의 한계가 있으므로 공연히 이것저것 넣기 보다는, 고심해서 꼭 필요한 것만 입력해서 비교 분석하곤 했다. 고작 1.2 MB 용량의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했던 시대와 비교하면 요즘은 저장장치의 용량도 커졌고, 컴퓨터의 정보처리 능력도 월등해졌다. 이제는 무엇이 유의미할지 고심할 필요도 없이 다 넣고 돌리면 된다. 알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일까? 이젠 별별 정보가 다 수집되는 것 같다. 쇼핑앱을 열면 "이런 제품을 원하시지 않나요" 라며 제안을 하고, 다른 앱을 열어도 내가 보던 상품의 광고 배너가 뜬다. 편리하기도 하다. 허용할 정보의 범위를 스스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슬그머니 모든 것이 허용되어 수집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을 떠나, 불공정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특히 민감한 개인 정보라면 내게 무슨 불이익이 생길까 두렵다.
의료정보도 그렇다. 어디가 아프고, 어디를 어떻게 치료했는지 제3 자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 정보를 악용해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개인의 취업이나 자격 취득, 재산권 행사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개인보험청구를 위해 진료기록사본을 발부할 경우에도 반드시 환자의 동의 하에 진행한다. 법령에 의해 의료기관은 매년 개인정보보호 교육과 자율점검을 시행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의 모든 의료정보를 모아서 관리하려는 시도가 보건복지부에서 행해지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및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개정안을 발표하고 지난 12월 16일자로 행정예고 하였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미 모든 의료기관의 비급여진료비는 각 의료기관 내부와 홈페이지 등에 공개돼 있으므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진료비 보고 의무제도는 매년 보고를 강제하여 어떤 수가로 어떤 환자를 치료했는가 하는 정보까지 수집 관리하는 것을 골조로 함을 볼 때, 국가기관이 전체 국민의 의료정보를 모두 확보해 무엇에 쓰려는지 우려가 된다.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지난 비급여 공개 이후 보건복지부는 강제적으로 수집한 수가 정보를 민간기업에 제공해 플랫폼 영업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심평원이 수수료를 받고 국민의 의료정보를 민간 보험사와 보험연구기관에 팔아 넘긴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카카오, KT, LG유플러스 등의 서버 문제나 고객정보 누출 사고를 생각하면, 민감한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두는 일 자체가 위험을 초래한다. 비급여 의료정보를 추가로 모아 위험을 자청하는 까닭이 의아스럽다.
의료인으로서는, 개인 의료정보 누출에 대한 우려로 국민의 건강권이 침해될 것도 걱정된다. 헌법재판소에서 비급여 정책과 관련한 의료법 등의 위헌확인 소송이 진행중이다. 민간 기업의 알 권리보다는 국민의 알려지지 않을 권리를 지켜 주실 것을 헌법재판관들께 간곡히 호소한다. 그리하여 부디 국민건강도 함께 지켜 주시길 바란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명 운명의 날…친윤 "벌금 80만 원" vs 친한 "무죄라 해라" - 대전일보
- 연장에 연장 거듭하는 대전시 산업단지 조성…분양 악재까지 - 대전일보
- 충주 수영부서 집단성폭력 의혹…"형들에 사과받게 해달라" - 대전일보
- 민선 8기 공약 대전천 천변도로 확장, 사정교-한밭대교 예타 통과에 힘 얻나 - 대전일보
- "이사하는데 작업자 술값까지?" 포장이사 플랫폼 피해 봇물 - 대전일보
- 장경태 "명태균, 휴대폰 안 버렸을 것…尹에 지켜달란 시그널" - 대전일보
- 부동산 매물 투어하는 MZ…중개인 "혼란 가중" 속앓이 - 대전일보
- 미국 증시는 불장인데… 코스피, 2개월 만에 2500선 붕괴 - 대전일보
- "돈 없어서 꿈도 못 꿔요"…국민 절반 '결혼 안해도 된다' - 대전일보
- 올해 말 종료 예정인 친환경차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2027년까지 연장 - 대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