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프 판즈베던 “클래식 미래에 동양이 큰 역할 할 것”

임석규 2023. 1. 1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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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 기자간담회
서울시립교향악단 차기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지휘자 야프 판즈베던이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엄하고 무서운 ‘호랑이 지휘자’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야프 판즈베던(63)은 강렬한 무대 위 이미지와 달리 소탈하고 친숙한 면모를 보였다.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기자들과 처음 대면한 그는 “편하게 ‘얍’이라고 불러달라”며 친근하게 말문을 열었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서 동양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가 서울시향을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국 음악가들과의 각별한 인연도 꼽았다. 특히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 재학 당시 배웠던 강효(78) 교수를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교사’라고 칭하며 “어떤 선생님보다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존경을 표했다. 그는 “한국 출신 연주자들과 많이 교류했고 친구들도 많아 서울 오는 게 고향을 찾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인 그는 19살 때 빈필, 베를린필과 함께 이른바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별명은 ‘오케스트라 조련사’다. 홍콩필하모닉을 10년 만에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끌어올렸고, 미국 댈러스 심포니도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다. 미국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악장 시절 전설적 지휘자들의 ‘무료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며 게오르그 숄티, 레너드 번스타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의 이름을 열거했다.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지휘자 야프 판즈베던이 지난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하는 모습. 서울시향 제공

공식 임기는 내년 1월부터지만 오는 4월 새 단원 선발을 주관하는 등 올해부터 사실상 서울시향을 책임지게 된다. 그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며 오는 2028년까지 이어질 5년 여정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내년 6월엔 홍콩필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내년 말엔 뉴욕필 음악감독직도 그만둔다. 2025년부터는 오로지 서울시향에 집중하게 되는 셈이다. 그는 시향 전용 공연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최근 오찬을 함께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전용 공연장을 직접 개장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세종문화회관 일부를 리모델링해 오는 2028년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그가 원하는 서울시향은 ‘다양한 색채를 구사하는 카멜레온 같은 오케스트라’다. “렘브란트 같은 무거운 색채도, 반 고흐의 화려한 색채도 다양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레퍼토리의 다양성도 강조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한 다음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공연하고, 모차르트로 갔다가 다시 바그너를 연주할 수 있어야 좋은 오케스트라라고 했다.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음악으로 서울시향 레퍼토리를 확장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홍콩필하모닉과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음반으로 발매해 호평받았다. 서울시향과는 바그너의 다른 오페라들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엔그린> <파르지팔> 등의 오페라를 거론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도 1년에 최소 1곡은 연주하겠다고 했다. 그는 “말러가 신을 찾으려고 했던 작곡가였다면, 브루크너는 신을 발견한 작곡가”라며 “브루크너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곡가”라고 했다.

서울시향 연주의 30% 정도는 창작 초연 곡으로 채우겠다고 했다. 그는 뉴욕필을 이끌며 초연 곡을 자주 연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작곡가들에게도 많은 곡을 위촉하겠다고 했다. 특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만든 정재일을 ‘환상적인 작곡가’라고 언급하며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엄격한 조련사’로 알려진 탓인지 그는 ‘민주적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지휘를 시작한 이래 단 한명의 단원도 해고한 적이 없다”며 “때론 엄격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더 나은 연주자가 되도록 하는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야프 판즈베던은 내년 홍콩필과 뉴욕필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나 2025년부터는 서울시향에 집중하게 된다. 서울시향 제공

그는 오는 4월 서울에서 자폐아 등 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공연을 펼친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1년에 한번은 이런 공연을 열겠다”고 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자폐 스펙트럼 아동을 위한 ‘파파게노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자녀를 두고 있다. 이 재단엔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전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참여하고 있다. 판즈베던과 히딩크 감독은 부부끼리 자주 만날 정도로 친분이 깊다고 한다.

판즈베던은 이날 기자간담회 직후 홍콩 공연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오는 7월과 11월, 12월에도 서울시향을 지휘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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