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정원(庭園)
집은 사람에 의해 계획되고 지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원 역시 계획되고 만들어져 집의 일부가 된다. 어찌 보면 집은 정원의 완성으로 비로소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다.
집에 어울리는 정원의 모습을 갖추는 데까지 보통 1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멋진 정원 혹은 잘 만들어진 정원이라 하는 곳은 계절에 맞춰 돌아가며 꽃이 피고 새순이 돋기를 반복해 끊임없이 꽃을 볼 수 있고 꾸준히 변화하고 달라지는 곳을 그리 말한다.
그런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필자 역시 작은 집을 지으면서 정원을 구성했다. 계획 전 완만한 경사지였던 땅은 경사에 맞춰 4단으로 계획했고, 집이 앉혀질 곳과 정원 구간을 나눴다. 그 땅에 있었던 나무들은 최대한 그 자리에 두는 것을 기본으로 배치 계획을 세웠다. 정원엔 몇 그루의 큰 나무들과 울타리용 조경수를 심고, 기존 언덕에 있었던 느티나무 두 그루는 그대로 살려 그 아래 평상을 만들어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나무 그늘 옆 경사지를 활용해 물이 흘러 내리는 작은 연못도 만들어 평상에 누워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면 마치 계곡에 앉아있는 생동감을 느끼고자 했다.
각 경사지는 자연석을 조경석으로 둬 사이사이 식물을 심기로 했다. 첫해는 풀과의 전쟁으로 곤욕을 치렀다. 관리할 줄을 몰라 미리 뽑지 않은 풀들은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잔디보다 많아졌고, 그것을 정리하는데 몇 곱절의 시간과 노력을 더 해야 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면서 정원 관리의 요령도 생기고 각 계절에 주변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터득했다. 덕분에 2월 중순이면 마당을 서성이다가 삐죽 튀어나온 파란 풀들을 뽑고 잔디 밟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사 온 지 4년이 되던 여름 어느 날, 느티나무 옆 복숭아 과수원이 시끄러워 나가보니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중장비가 과수원을 가로지르며 뿌리를 뽑아내고 있다. 아직 나무에는 미처 수확하지 못한 빨간 복숭아가 달린 채로.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는 그 나무들은 우리가 이사 오기 훨씬 이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존재들이었으며, 봄이면 도화원을 이뤄 멋진 풍경을 선사해 주었었다. 열매가 달린 복숭아나무들을 베어내던 그 모습이 흡사 살육의 장면과도 같아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좀 기다릴 수는 없었을까? 사업이 많이 급했나? 많은 생각이 떠올랐으나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땅은 여전히 벌거숭이다. 그 사이 과수원과 과수원 주변의 괜찮다 싶었던 나무들을 모두 뽑혀 어디론가 실려 가고 이따금 중장비들이 흙을 이리저리 옮기며 작업을 할 뿐이다.
지난여름엔 먹지도 않을 옥수수를 심었다가 갈아엎었다. 옆집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며 다짐을 했다. 주변에 나무가 없으니 이제 내가 심어야겠다고. 경관이 좋아 집터를 골랐으나, 그 경관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뀌니 이제는 내가 그 경관을 만들 차례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집 정원부터 시작해야겠다.
겨울이다. 모든 것이 움츠러들고 나무들은 그 잎을 떨구며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것이 흡사 죽은 듯도 하다. 그래도 눈이 내리면 가지마다 소복소복 하얗게 눈꽃이 핀다. 나무들은 가을이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양분을 뿌리에 집중시킨다고 한다. 그리하여 길고 추운 겨울에도 굳건히 버텨 봄이면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한겨울인 요즘에 마당에 나가 잔디를 보고 있자면 그사이를 비집고 초록의 잎과 선명한 풀들이 보인다. 내달 중순이면 시작하는 풀 뽑기를 한겨울에도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누가 풀이고 잡초라 하여 제거의 대상으로 정했을까?" 하는 질문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낙엽을 떨군 나무 아래에 푸른 잎들이 꽁꽁 언 채 굳건히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올 봄부터는 정원 리모델링을 시작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산책과 다양한 식물들이 곳곳에 적절하게 자리를 잡아 다듬은 듯 다듬지 않은 듯 원래 그랬던 곳 같은 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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