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가 고용주 버려두고 떠나" Vs "고용주가 등반 고집하다 탈진한 것"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유망 산악인이 지난여름 K2(8,611m)에서 사망한 사건을 두고 가이드와 미망인 간에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미망인은 '처음 사고가 발생했을 땐 단순 급성 심장병인 줄 알았는데 지불한 비용에 비해 미숙한 가이드가 배정됐고, 가이드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행사 측은 '가이드가 하산을 요구했으나 고용주가 등반을 고집하다 사망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사망한 산악인은 알리 아크바르 사키다. 3캠프 조금 아래에서 변을 당했다. 2020년 아프가니스탄 최고봉 노샤크(7,492m)에 아프간인들로만 구성된 원정대를 처음으로 조직해 등정에 성공한 인물이다. 이후 '하이크벤처'라는 산악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아프간인 중에서는 아직 8,000m 산을 오른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키는 K2를 올라 아프간인 최초 8,000m급 등정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사키 부부는 아프간인 중에서 연애결혼에 성공한 아주 드문 사례다. 미망인에게는 8세, 5세, 2세 아들이 있다.
최초 사키의 사인은 급성 심장병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망인의 제보로 다른 내막이 공개돼 파장이 커졌다.
사키는 거액인 4만 달러(약 5,000만 원)를 대행사인 '카라코룸익스피디션'에 지불했다. 그러면서 '경험 많은 셰르파'를 가이드로 고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키에게 배정된 가이드는 셰르파가 아닌 파키스탄인이었다. 게다가 사고 당일 사키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에는 사키의 가이드가 "미숙한 탓에 (가이드 자신의) 옷이 찢어지고 등반 시간을 잘 계획하지 못해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날 저녁에 눈보라가 몰아쳤고 사키는 탈진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홀로 3캠프로 올라가 버렸다. 이날 3캠프에는 카라코룸익스피디션 대표의 여동생이 파키스탄 여성 최초로 K2에 오르기 위해 6명이나 되는 가이드가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사키를 구조하기 위해 내려가지 않았다. 3캠프에서 사키가 있는 곳까지는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날 밤 눈보라도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튿날 아침 쾌청한 날씨 속에 3캠프에서 더 이상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하던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아직 생존해 있는 사키를 마주쳐 그와 함께 하산을 시작했다. 사키는 50m 정도 내려가고는 자신에게 심장병이 있다면서 쓰러져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주변 사람들은 시신을 옮길 여력이 없었는데 마침 올라오던 파키스탄 원정대 대원 2명이 시신을 약 50m 내려 안정된 지형으로 옮겨 놓았다.
대행사 '카라코룸익스피디션'에서는 사키가 2캠프로 돌아 내려가자는 가이드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3캠프 전진을 고집하다가 탈진해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사키의 가이드가 미숙했다는 정황, 3캠프에서 그날 밤에 사키를 아무도 구조하러 내려가지 않은 사실 등을 토대로 대행사가 가이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번 시즌 K2에서는 호주인 매튜 이큰도 사망했는데, 이큰의 시신을 수습하는 원정대가 동계 시즌인 오는 2월 떠날 예정이다. 이큰의 사망 경위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4캠프까지 오른 뒤 무전으로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홀로 하산하다가 나중에 전진캠프 인근에서 추락해 사망한 채 쓰러져 있는 게 다른 등반가에 의해 발견됐다. 2캠프 인근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발견 직후 작은 눈사태가 발생해 시신이 눈에 덮였다. 원정대 동료들은 시신을 수습하려고 시도했으나 여의치 못했고, 결국 적설량이 가장 적은 겨울에 다시 찾기로 했다.
K2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네팔에서는 숙련된 구조대를 결성하기 쉽고 헬기 구조법도 발달해 있어 최근 시신 수습이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반면 파키스탄에서는 헬기 구조가 어렵고 현지인 구조대 결성이 쉽지 않다. 그래서 고산등반 중 사망하게 되면 시신을 루트에서 벗어난 곳으로 옮기고 간단히 돌로 덮어두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다만 이큰의 경우 전진캠프에서 무척 가깝고 등반로 상에 시신이 있어 비교적 수습이 용이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신이 있는 곳까지 본격적인 등반 구간도 없어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한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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