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엑소더스]③ '10조 판사' 그들은 왜 법원을 떠나기로 했나
격무에 서울근무 혜택 줄어…로펌은 고연봉 영입경쟁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이영섭 기자 = 2017년 9월 시작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 인사 개혁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인사 폐지와 지방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으로 요약된다.
고법 부장판사 폐지는 대법원장의 '줄세우기' 폐단을 없애고 법관인사 이원화를 안착시키기 위해, 지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민주적 사법행정을 명분으로 추진됐다.
김 대법원장의 첫인사였던 2018년을 끝으로 더는 고법 부장판사는 나오지 않게 됐다. 아울러 고법 부장판사가 경력순으로 맡았던 지법원장 자리는 일선 판사의 추천을 받은 '지법 부장판사'만이 임명될 수 있다.
대신 고등법원 판사, 즉 '10조 판사'(법관인사규칙 10조에 근거해 보임한 판사)가 이 자리를 채우게 됐다. 그러나 이들이 최근 줄줄이 법원을 떠나 로펌 업계로 유입되고 있다.
서울 근무 이점 사라지고 법원장도 못돼
고법 판사는 고법 부장판사도, 지법원장도 될 수 없다.
승진으로 여겨지는 고법 부장판사 인사는 아예 폐지됐고, 지법원장은 지법 부장판사만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고법원장은 아직 정년이 남은 고법 부장판사가 많아 당분간은 고법 판사에 기회가 돌아가긴 어렵다.
고법 판사의 경력은 지법 부장판사와 비슷하다. 이들의 사법연수원 동기가 지방법원에선 부장판사라는 뜻이다. 자연히 두 보직을 서로 견주게 된다.
법관인사 이원화 초기 이들에게 제공된 대표적 혜택은 지법 부장판사 연차가 돼도 지방에 가지 않고 서울고법이 있는 서초동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통상 배석판사가 지법 부장판사로 임명되면 지방에서 2∼3년 근무하는 게 관례인데, 고법 판사가 되면 서울에 남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안착하고 지방에서 일할 고법 법관 수요가 커지면서 고법 판사의 지방 근무도 점차 늘게 됐다. 현재는 고법 판사로 임명된 후 첫 5년은 서울고법에서 근무하면 이후 3년은 지방에서 근무하는 게 관례로 굳어졌다.
이처럼 상대적 이점인 서울 근무는 줄어든 반면 업무의 단점은 명확하다.
지법 부장판사는 단독재판부에서 소송 가액이나 법정형량이 비교적 낮은 사건을 맡거나 합의재판부에서 후배 법관과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고법 판사가 속하는 재판부는 대등재판부뿐이다.
법관 사이에서 단독재판부는 사건 합의 과정의 부담이 없고 사건도 비교적 가벼워 '숨 돌릴 틈'이 있는 자리로 인식되기도 한다. 따라서 고법 판사에게 이런 근무환경은 불가능한 셈이다.
고법 판사끼리 일하는 실질 대등재판부라면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고법 부장판사와 일하는 대등재판부에선 사실상 배석판사나 다름없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고법 부장판사 1명과 고법 판사 2명으로 구성된 대등재판부는 고법 부장판사가 전체 사건의 7분의 1만 주심을 맡아 '대등하지 않은 대등재판부'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고법 판사의 업무 강도가 높다.
법원보다 높은 연봉 주고 '모셔가는' 로펌
이처럼 법원에서 어려운 일을 도맡으면서 숨 돌릴 틈도, 서울 근무의 이점도, 기관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도 기약 없는 고법 판사에게 기회는 법원 밖에 있다.
이들 대다수가 40, 50대로 경륜을 갖췄으면서도 한창 일할 시기이고 능력을 인정받아 임명된다는 점에서 변호사 시장에서 환영받는다. 공무원으로선 얻기 힘든 고수익의 창이 열리는 것이다.
특히 고법 판사는 퇴임 후 곧장 대형 로펌에 취업할 수 있다. 고법 부장판사는 공직자윤리법과 시행령에 따라 연 매출 100억원 이상 법무법인 등에 5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점과 대조된다.
이 때문에 매년 법관 정기인사가 발표된 직후인 2∼3월 대형 로펌이 고법 판사 출신 변호사를 영입했다고 경쟁적으로 홍보하는 풍경이 벌어진다.
판사보다 판사 출신 변호사가 많은 연봉을 받는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김명수 사법부에서 고법 판사가 법원에 남아있을 이유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지법 부장판사 임명을 앞둔 한 단독재판부 판사는 "고법 판사로 근무할 다른 장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로펌에 가기 전 몸값을 올리기에 좋은 자리라는 게 동기들 사이에 공공연한 평가"라고 설명했다.
이런 판사의 이탈은 법원의 인력난 악화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와 연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전관이 변호사 시장에 자리 잡는 일이 늘수록 전관예우 근절도 더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전관들 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인맥 세일즈'도 가열될 수 있다.
한 법원장 출신 고법 부장판사는 "과거 사법부가 전관예우 문제를 없애려 '예우'를 근절하려고 꾸준히 노력했지만 그것만으로 전관예우 문제를 없앨 수는 없다"며 "전관이 있는 한 전관예우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별 재판부가 아무리 엄정하게 사안을 판단하더라도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더 유리한 결론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펌 업계 역시 이런 기대심리를 이용해 시장에 쏟아지는 전관 영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jaeh@yna.co.kr,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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