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인 줄 알았는데 위기의 씨앗”…건설사 흔든 ‘트로이 목마’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미분양 공포,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가 겹치면서 건설사들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다. 2008년에는 금융 위기와 함께 최악의 미분양이 건설사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2011년에는 PF 부실화가 터지면서 시공 능력 100위권 내 중견 건설사들이 줄도산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오일 머니를 잡기 위한 ‘저가 수주’ 전략이 재무 악화로 이어지는 흑역사도 있었다. 위기인 줄 알고 뛰어들었던 건설사는 한 군데도 없다. 기회인 줄 알고 잡았지만 건설사 위기의 진원지가 된 ‘트로이의 목마’를 되짚어 봤다.
"매달 생활비 드려요" 홈쇼핑 등장한 아파트
“몸만 오세요. 9억원짜리 최고급 새 아파트를 전세금 1억5000만원만 내고 3년간 살 수 있습니다. 사는 동안 관리비는 시공사가 모두 내주고 매달 최고 170만원씩 현금도 드립니다.”
2013년 한 홈쇼핑 채널에 아파트가 등장했다. 두산건설이 매물로 내놓은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아파트의 전세 조건이다. 지금 보면 ‘안 들어갈 이유가 있나’ 싶을 만큼 파격적이다. 경의선 탄현역과 직접 연결되는 초역세권 입지에 최고 59층, 2700가구 규모의 대단지 주상 복합 아파트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2009년 착공 이후 미분양을 털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는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시공사인 두산건설에 조 단위 손실을 입힌 애물단지다. 두산건설뿐만 아니라 두산그룹 전체를 구조 조정의 늪에 빠뜨린 단초가 됐다. 두산건설은 2009년 두산위브더제니스에 착공했다. 당시 평균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상당히 높은 3.3㎡당 1690만원에 책정됐다.
하지만 2013년 준공할 때는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입주 예정자들의 분양 포기가 속출했다.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한 두산건설은 대량의 미분양을 그대로 떠안았고 파격적인 할인 분양에 나섰다.
일산에서 미분양 사태가 나기 전까지 ‘위브더제니스’는 두산건설의 야심작이었다. 대구와 부산에서 마천루 역사를 새로 쓰며 최고급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2005년 10월 두산건설이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분양한 위브더제니스는 고분양가 논란을 딛고 청약에서 2.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구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두산건설은 주택 시장이 절정이던 2006~2007년 울산·포항·부산 등에서 잇달아 두산위브더제니스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서 분양한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 펜트하우스는 여전히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지방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분양을 해오던 두산건설은 2008년 경기 일산에도 분양 계획을 세운다. 당해 9월 한국 최대 규모의 주상 복합 아파트인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분양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해 갑자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 위기로 다음 해인 2009년 상반기로 분양이 미뤄졌고 경기 회복 속도가 더뎌지면서 그해 12월로 일정을 다시 한 번 미뤘다.
당초 계획보다 1년 이상 늦춰진 1·2순위 청약에서는 0.11 대 1의 초라한 성적표를 기록하며 모든 평형이 미달됐다. 3순위 청약 때는 분양자에게 순금과 명품 핸드백, 지갑, 넥타이까지 안겼지만 최종 청약률은 36.1%에 그쳤다. 큰 기대를 걸었던 일산 제니스가 1~3순위 청약에서 미분양을 기록하자 두산건설은 분양가를 당초 3.3㎡당 1700만원에서 1200만~1400만원으로 낮췄다. 또 발코니 무상 확장과 에어컨·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 무료 제공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그래도 미분양이 줄지 않았다. 일산 위브더제니스는 두산건설을 넘어 그룹 전체를 흔든 위기의 씨앗이 됐다. 미분양 물량이 대거 쌓이면서 기업 유동성과 신용도에는 금이 갔다.
손실이 이어지자 그룹 전체가 건설 살리기에 나섰다. 두산건설 자금난 극복을 위해 두산중공업과 두산 등 핵심 계열사들이 끊임없이 지원에 나섰지만 오히려 이런 지원이 그룹 전체의 위기를 불러 왔다. 두산건설 당기순이익은 2010년 59억원에서 2011년 2934억원 적자로 급감한다. 2019년 12월에는 결국 상장 폐지에 이른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수년간 두산건설에 2조원 가량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오히려 이 여파로 2014년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결국 두산중공업은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에서 1조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받아 ‘기사회생’ 했다. 애물단지가 된 두산건설은 매각했다. 두산그룹은 2021년 두산건설을 사모펀드 운용사 큐캐피탈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매각한다.
비싼 수업료, 오일 머니
‘오일 머니’가 건설사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저가 수주 전략이 부실로 돌아왔던 중동발 오일쇼크 사태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기록하면서 중동 산유국들은 앞다퉈 플랜트 발주 물량을 확대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오일 머니’를 잡기 위해 플랜트 수주전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수익성보다 양적 수주에 몰두한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는 분석이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로 몰려나가 저가 수주 경쟁을 펼치며 무리하게 규모를 확대해 2013년 말부터 해외 현장의 부실로 어닝쇼크가 나는 등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며 “양적 수주에 몰두했지만 2015년부터 유가가 빠지기 시작하면서 시장에서 중동을 잃었고 상품에서 ‘플랜트’를 잃으면서 수주 실적도 반 토막이 났다”고 설명했다. 실제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은 2013년 해외 사업의 후유증으로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손 연구위원은 “2016년부터 5년간 한국의 주택 부동산 경기가 너무 좋아 그 이후로는 건설사들이 한국 시장에 집중하고 해외 수주 전략도 보수적으로 취하고 있어 당시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 먹고 탈 난 기업들
건설사를 먹고 탈이 난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외형 확장과 사업 다각화를 위해 건설사를 인수했지만 부실한 건설사를 떠안으면서 도리어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된 사례다. 웅진그룹이 인수했던 극동건설, 대한전선이 인수했던 남광토건이 대표적이다. 금호그룹도 대우건설 인수에 막대한 자금을 써 위기에 빠진 케이스다.
웅진그룹은 2007년 6월 론스타펀드에서 6600억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업계의 예상 금액보다 2000억원 정도 높은 돈을 지불하며 공격적인 인수전을 펼쳤지만 결국 그룹을 위기에 몰아넣은 트로이의 목마가 됐다.
2008년 웅진그룹에 편입된 극동건설은 PF 방식으로 대규모 주택 건설에 나섰다. 이때 시공사의 지급 보증을 조건으로 걸었다. 사업의 수익성이 나지 않으면 시공사인 극동건설이 빚을 대신 갚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 몰아닥친 극심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경기 파주와 대구·안동 등 지방에서 벌인 사업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했다. 아예 착공조차 못하는 예정 사업장이 급속도로 늘어 갔다. PF 사업에 조달한 자금 상환 압박도 심화됐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 같은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2년과 2013년 각각 1000억원의 유상 증자를 통해 극동건설에 지원했다. 지주사인 웅진홀딩스가 지급 보증한 PF 사업 규모도 2800억원에 육박했다. 극동건설이 파산하면 결국 빚 부담은 웅진홀딩스가 지게 되는 구조였다. 결국 웅진그룹은 두 회사의 동반 법정 관리를 신청한다. 이후 극동건설은 세운건설에 인수돼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2008년 대한전선이 인수한 남광토건 역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2012년 8월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2015년 1월과 12월 두 차례 변경 회생 계획 인가를 받았고 공개 입찰을 거쳐 세운건설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 역시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며 경영 위기를 맞았다.
2006년 말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재계 순위가 껑충 뛰었다. 당시 그룹 건설사인 금호산업은 시공 능력 평가 10위에 불과했고 대우건설은 1위였다.
대우건설 인수와 함께 단번에 몸집 키우기에 성공하지만 인수 자금의 절반 이상인 3조5000억원을 외부에서 차입하면서 유동성 압박에 시달렸다. 당시에도 무리한 사업 확장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결국 금호그룹은 인수 후 3년 만에 대우건설 재매각을 발표했다. 2011년 KDB산업은행이 3조2000억원을 들여 대우건설을 다시 매입했다. 지난해 3월에는 중흥건설이 KDB산업은행에서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새 주인이 됐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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