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만 파다간"…우유회사도 과자회사도 사명 변경 '붐'

한전진 2023. 1. 1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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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교체 나서는 매일유업·롯데제과  
"업 규정 모호한 시대…새로운 가치 필요"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연초부터 유통업계에 '사명 변경' 바람이 거세다. 주로 업(業)의 본질을 사명에 드러냈던 업체들이다. 이들은 기존 사명을 바꿔 브랜드 확장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소비자에게 변화를 어필해 '고루함'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다만 사명 변경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감수해야 한다. '리브랜딩'에 따르는 대내외적 비용도 적지 않다. 

그 옛날 '유업·제과'

18일 업계에 따르면, 매일유업, CJ제일제당, 롯데제과 등이 사명 변경을 검토했거나 진행 중이다. 매일유업은 이르면 올해 사명에서 '유업'을 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디저트, 대체유, 단백질 등 신사업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사명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사명 변경은 종합식품기업 확장을 표명한 이래 계속 논의됐던 것"이라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매일유업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CJ제일제당도 몇 년 전 '제당'을 뺀 '뉴 네임' 물색을 검토했었다. 제당을 풀이하면 '설탕 제조사'다. 최근 '비비고' 등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난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과거 실무진 사이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했지만 지금은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CJ제일제당이 곧 새로운 사명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제과도 올해 사명 변경을 검토 중이다. 롯데제과는 고 신격호 명예회장이 1976년 설립한 롯데 그룹의 모태가 된 회사다. 올해로 55년간 사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상징성이 높다. 다만 지난해 7월 롯데제과가 롯데푸드와 통합하면서 새로운 사명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앞으로 본업을 넘어 제빵, 육가공 등 종합식품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게 롯데제과의 구상이다. 

모호해진 업(業) 

업계의 사명 변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야쿠르트, 할리스 커피 역시 지난 2021년 사명을 각각 hy, 할리스로 바꿨다. 이들 사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명에서 '업' 지우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사명에 업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다. 업태 구분이 명확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산업·사회·기술의 발전으로 현재는 기업의 업을 뚜렷하게 규정 짓기 어려워졌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7월 롯데푸드와 통합했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우유 회사가 우유만, 제과 업체가 과자만 팔던 시대는 지났다. 실제로 매일유업은 커피전문점 폴바셋, 외식 업체 크리스탈제이드 등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단백질 브랜드 '셀렉스'와 같은 건강기능식품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롯데제과도 신사업으로 시니어푸드, 건강기능식품 등을 점찍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업'을 나타내는 사명은 향후 확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다. 

가장 빠르게 나섰던 곳은 홈쇼핑 업계다. TV 영향력이 줄어든 변화한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현재 '홈쇼핑'을 사명에 그대로 쓰고 있는 업체는 드물다. 대신 패션, 뷰티, 라이프 등 미래 지향적 가치를 사명에 담고 있다. 'CJ오쇼핑'에서 'CJ온스타일'이 됐고, 'GS홈쇼핑'은 'GS샵'이 됐다. 업에 대한 직관성은 떨어졌지만 그만큼 '라이브 커머스' 등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는 평가다. 

양날의 '검' 될수도

물론 사명 변경은 '양날의 검'과 같다. 리브랜딩으로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지만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2021년 '메타'로 사명을 변경했다. 가상 메타버스로 나아가겠다는 미래 비전을 담았다. 하지만 인지도가 크게 오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기존 페이스북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 사례로 꼽힌다. 

'샘표' 사명을 지운 폰타나 제품 / 사진=샘표

사명 변경은 내외부적 비용도 많이 든다. 작게는 제품의 포장지부터 마케팅 콘셉트까지 바꿔야 할 것이 많다. 변경된 사명을 알리고 안착시키기 위한 홍보 비용도 든다. 그만큼 리스크도 따른다. 사명 변경은 명확한 이유가 있을 때 새롭게 주의를 끌기 위한 시도다. 전보다 못한 성과가 난다면 되려 소비자의 반감만 커질 수 있다. 한번 입은 브랜드 타격은 쉽게 회복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차선책을 찾는 경우도 많다. 사명은 유지하되 하위 브랜드에서 이를 숨기는 경우다. 샘표가 대표적이다. 샘표는 파스타와 수프 등 서양식 조미식품을 내놓으면서 '폰타나'라는 신규 브랜드를 사용했다. 샘표는 국대 대표 간장 브랜드다. 서양식 브랜드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샘표는 철저히 사명을 숨기고 '다니엘 헤니' 등을 모델로 기용하면서 고급화 전략에 성공했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가 수십 년 간 사용하던 사명을 바꾼다는 것은 더 이상 기존 사업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특히 우유·제과는 학령 인구 감소 등으로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업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에겐 변화의 시기를 놓치면 위기에 놓일 것이란 위기감이 있다"며 "사명 바꾸기는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풀이했다. 

한전진 (noretreat@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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