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중동붐' 위해선…정상간 지속 소통 중요·'脫 석유' 흐름 이해해야
'탈석유' 중동 방향성에 맞춰야…출혈경쟁·현지인력 고용 '넘어야할 산'
(서울=뉴스1) 권혜정 문창석 김종윤 이형진 기자 = 글로벌 경기침체 한파가 매서운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며 우리 기업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300억 달러 규모의 UAE 대규모 투자 및 수주 계약 성사로 우리 기업들은 경기 침체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UAE와의 다양한 MOU(양해각서)가 또 한 번의 '중동 붐'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들이 원팀이 되어 협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왕정국가인 UAE의 특성상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정상외교'가 필수인 동시에 MOU 진행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우리 기업간 출혈 경쟁과 핵심 기술 방어, 현지 인력 고용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UAE는 물론 중동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脫) 석유'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맞춰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 중동서 특히 중요한 정상외교…"핵심기술 방어 등에 역할해야"
이번 윤석열 대통령 UAE 방문의 최대 성과는 300억달러의 대규모 투자 약속이지만 양해각서는 양측이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거치는 과정인 만큼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UAE와의 대형 MOU가 본계약까지 무사히 이어지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UAE가 왕정국가인 만큼 우리의 정상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UAE 입장에선 한국 측에서 자국의 왕에 대응하는 대통령이 나서는 것과 소관 부처 장관이 나서는 건 매우 큰 차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번 MOU가 대규모로 이뤄진 것도 윤 대통령이 직접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MOU가 이행되는 과정에서도 대통령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양측의 논의가 진행되다가 막힐 경우 대통령이 이를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중동 지역에선 특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중동에선 정상들이 결정해야 될 사안을 직접 만나 해결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며 "밑에서 진도를 나가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정상 두 사람이 만나 도장을 찍으면 해결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MOU가 본계약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윤 대통령이 계속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 교수는 "윤 대통령이 UAE를 한번 다녀온 후 각 부처에 맡기고 신경을 안 쓰면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며 "어떻게 대응할지 세세하게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술 이전 면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이 유럽·일본 등을 제치고 이번 MOU를 따낸 이유 중 하나는 기술 이전에 보다 열려있는 기조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의 핵심기술을 지킬 수 있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성 교수는 "UAE 측에 '이 정도까지는 기술 이전이 가능하지만 더 이상은 해주면 우리도 곤란하다'는 말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이건 기업 입장에선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며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이 기술만큼은 넘겨서는 안 된다'고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탈석유' 중동 방향성 맞춰야…"왕족 등 인맥 관리도 중요"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UAE 등 중동 진출 전략에 있어 최근의 '탈석유' 흐름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셰일가스·기후위기 등에 따라 중동 국가들은 석유 이후의 경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UAE와 MOU에 수소·원전 부문이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중동은 우리와 수소·방산·원전·우주사업 등 협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가지려고 한다"며 "기업들은 UAE 등의 국가들이 가려는 방향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도 "석유로 먹고 살던 UAE 등 중동국가들이 이제 더이상 석유로만은 갈 수 없다는 것인데, 우리 기업들은 정확히 이 부분을 파고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 석유 흐름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중동 진출에는 리스크 역시 존재한다. 과거 '중동의 봄'이 이른바 '오일머니'로만 투자되고, 우리 기업들은 노동력만 제공했던 것과 달리 최근의 흐름은 우리 기업들도 공동 투자를 담보해야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형 교수는 "사우디의 네옴시티 등을 보면 공동투자다. 과거처럼 중동이 다 투자하고 유치하는 것이 아니다"며 "과거처럼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득과 실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동 국가의 문화적 환경도 크게 고려해야 한다. 성일광 교수는 "우리는 공기 계약에 딱 맞춰서 일정이 진행되는데, '만만디' 문화가 만연한 중동은 그렇지 않다. 중동 특유의 문화로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며 "UAE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과거 중동에 진출해 중동 기업 문화를 경험한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세부적인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총수와 현지 왕족 간의 인맥 관리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중동 국가는 왕족 등 정치 지도자의 의사 결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이들에 대한 인맥관리는 늘 해도 모자라다"고 했다. 장병옥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기업들의 총수가 정부에 문제 해결을 위한 건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관계 강화를 위해 현지를 직접 찾는 등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韓 기업간 '출혈 경쟁'·자국민 인력 고용 등 '넘어야 할 산'
전문가들은 중동 국가의 특성상 현지 문화와 규제를 세세하게 살피는 것은 물론 UAE와의 협업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우리 기업들의 출혈 경쟁, 현지 자국민 의무 고용 규제 등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일광 교수는 "UAE 현지에서 우리 기업끼리 (저가 수주 등을 놓고) 싸우게 되면 사실상 출혈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과거 중동에서 비공개 항목인 입찰 금액 등이 경쟁국가에 누설되고, 이를 빌미 삼아 해당 국가가 우리 기업과 저가 협상에 나선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도 이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현지인 고용 문제 역시 걸림돌이다. UAE 등 중동 지역에선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일정 수준의 자국민을 최대한 고용할 것을 조건으로 걸고 있는데, 기업 입장에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검증되지 않은 인력의 채용을 줄이는 게 필요해서다. 강문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아프리카중동팀장은 "기업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 인력을 현지에서 고용하는 게 쉽진 않다"며 "이런 부분에선 정부가 (현지인 고용 비중 기준을 낮추는 등의) 역할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유가 시대로 돌아갈 경우에 대비해 제조업과 첨단 분야로 협력 기초를 쌓아둘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 팀장은 "중동 정부 수입이 고유가 효과로 늘면서 산업화, 도시화 측면에서 협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협력 분야를 다각화할 경우 저유가 시대에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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