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前 유엔 대사 “한반도 핵무장은 국익 포기하는 것… 강화된 美 핵우산으로 충분” [세상을 보는 창]
전술핵 배치 여부 차이는 고작 1시간
美 확장억제 전력 의심은 바보 같은 짓
北 무인기 침투 정쟁거리로 바람직 않아
軍 대응 잘못됐지만 지난 정권 누적 결과
정치권 초당적 안보 협력 외면 안타까워
北에 의해 이미 9·19 군사합의 폐기상태
확성기 방송 재개?전단 살포 등 근거 필요
尹 ‘전면 폐기’ 언급, 부담 있지만 실익 조치
“군의 대응이 잘못됐지만 정치권이 이를 정쟁거리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정부 출범 7개월 만에 터진 일인데, 그게 지난 7개월 만의 잘못으로 생겼겠느냐. 지난 정권에서부터 누적된 결과다.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의 흥망에는 평범한 백성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책임은 함께 느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북한 무인기 위협이 첨단화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력투구해왔다. 무인기 첨단화로 이어가기에는 당장 여력이 없을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당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1% 독트린’을 주창했다. 미국을 향한 적국이나 테러리스트 위협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단 1%에 불과하더라도 이를 100% 확신으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 무인기도 그렇게 지켜봐야 한다.”
―윤 대통령이 비례성 원칙에 따라 ‘북한이 무인기를 보내면 우리는 더 보낼 것’이라고 했다. 야권은 이를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하는데.
“군사적 측면에서 비례성 원칙은 군사적 조치로 인한 이익에 반해 민간의 피해가 과도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비례성 원칙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보복이나 응징으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보복과 응징 차원의 행동을 정전협정 위반이라 한다면 인과관계에 관한 아주 심각한 도착(倒錯) 심리다.”
―윤 대통령이 9·19 남북 군사합의 전면 폐기를 처음 언급했다. 폐기하면 실익이 있다고 보나.
“이미 9·19 군사합의는 북한에 의해 폐기됐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을 굳이 대통령이 짚고 넘어가면 우리가 먼저 폐기한 것처럼 국제사회가 여길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군사 합의 내용 중에 북한의 요청으로 중단한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와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불법으로 규정짓지 않으려면 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발언은 그런 차원일 거다. 부담이 있지만 실익이 있고 필요한 조치다.”
―윤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에 대한 이례적 언급도 했는데.
“발언 앞뒤 맥락을 따져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악화할 경우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따져 보자는 것이지 지금 당장 핵개발을 하자는 게 아니다. 언론에서 거두절미하고 단장취의(斷章取義: 문장의 필요한 부분만을 떼어서 그 뜻만 인용하거나 마음대로 해석해 쓰는 것) 한 거다. 우리 국민이 북한 핵과 미사일로부터 받는 위협의 강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걸로 이해한다.”
―지난 정부에서 반복했던 ‘예의 주시’란 말 대신 ‘일전불사’의 각오로 대응하겠다는 새 정부와 군이다.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동안 북한에 너무 끌려 다녔다. 오죽했으면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면 ‘미상 발사체’라 했겠느냐.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과 다름없었다. 국민들이 느꼈던 그런 치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는 유효한가.
“과거 6자회담과 같은 협상에 의한 해결은 현재로선 불가능해졌다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다.”
―그렇다면 CVID 목표는 포기해야 하나.
“포기하는 순간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포기해선 안 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비핵화 추진 의지를 확인하고 결의를 다지는 자세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
―북한 정권의 균열과 고갈을 타깃으로 ‘천천히’ 전략을 강화해 나가야 할 때라고 주장했는데.
“중국이 억누르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른 유엔 제재는 거부권을 행사해 지원하면서도 핵실험을 강행하는 데는 반대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다는 기조의 유지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나.
“2018년 평창올림픽 때처럼 화해 무드 조성 등 낙관적인 상황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북한이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우리 정부는 원칙을 가지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우발적 충돌에 따른 긴장 관리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반도 안팎으로 군사적 대치 상황이 엄중한데 우리 정치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경쟁과 대립은 분명 정권 획득에 필요한 조건이나 안보 분야에서만큼은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외면하는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
―올해로 70년을 맞는 한·미동맹을 평가하자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성공한 동맹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53년 군사동맹으로 시작해 오늘날 가치동맹을 추구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이제 30년 뒤 100년 동맹의 비전을 고민해야 한다.”
―전술핵 도입으로 북한과 핵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과 정치·외교·군사적 비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전략을 적당한 선에서 의심하거나 자극할 수 있어도 진지하게 의문을 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서 핵무장은 반대한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 가장 첨예한 실익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단기간에 개발할 수도 없다. 개발에서 보유까지 최소 5년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 전술핵 배치도 불필요하다. 미국의 신형 스텔스 전폭기 B-21 레이더(Raider)의 한반도 인근 전진 배치 등 강화된 확장억제 전력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이 핵개발에 나선다면 한·미동맹은 유지될까.
“겉으로 동맹은 유지되겠지만 내부 균열은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의 공포가 우리에게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데.
“먼저 동맹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100% 동맹에 기댈 수는 없다. 중국과의 경제·통상·교류는 작지 않은 함의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다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대신 원칙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반격능력’ 보유를 선언하며 전수방위 원칙을 77년 만에 폐지했다. 팽창하는 일본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다.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일 간 과거사 문제로 안보 분야가 왜곡돼선 안 된다. 과거 윈스턴 처칠은 ‘과거와 현재가 싸움을 벌인다면, 미래를 잃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고 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미·일 공조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일본의 방위비 증액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언급도 그런 측면에서 나왔을 것이다. 독도를 두고 한·일이 전투를 벌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본이 우리의 잠재적 적은 아니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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