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의 시대]③ 신동빈도 사로잡았다… ‘코시국’에도 사람들 줄세운 팝업 전문가
“매장 빌려드립니다” 주 단위로 공간 임대하고, 팝업스토어 기획
“재밌으면 온다” 코시국에 성수동에 ‘점집’ 열어 방문객 급증
6평짜리 매장서 시작, 8개 매장으로 확대… 온라인·해외 진출도
“오프라인 매장의 가치는 입지보다 좋은 콘텐츠”
“백화점만 가면 힘들어하는 남성들도 팝업스토어(임시매장)에서는 사진을 찍고 즐거워합니다. 왜일까요? 즐거워서죠.”
팝업스토어 기획 전문 플랫폼 프로젝트렌트(Project Rent)를 이끄는 최원석 대표는 팝업스토어의 인기 비결을 ‘재미’에서 찾았다.
브랜드 컨설팅 기업 필라멘트앤코가 운영하는 프로젝트렌트는 2018년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을 중심으로 8곳의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자사 공간을 주 단위로 브랜드에 빌려주고, 함께 팝업스토어를 기획한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오비맥주, CJ제일제당, 배달의민족, 롯데월드 등 200여 개의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롯데제과와 ‘가나초콜릿하우스’, 매일유업과 ‘어메이징 오트 카페’를 기획해 각각 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최 대표는 LG전자에서 모바일 디자인을, 현대카드에서 브랜드 관련 디자인 기획업무를 하다가 2014년 회사를 창업했다. 프로젝트렌트는 임대료가 비싸 오프라인 매장을 낼 여력이 안 되는 괜찮은 신규 브랜드를 비어 있는 상가를 활용해 소비자들과 만나게 한다는 구상으로 시작했다.
지난 11일 조선비즈와 만난 최 대표는 “아무리 좋은 매장도 3개월이면 ‘오픈발’이 사라진다”면서 “팝업스토어는 그걸 넘어서는 강력한 콘텐츠를 지닌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프라인 매장은 즐거움의 장소, 발견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건 오프라인 매거진(잡지)”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최 대표와 일문일답.
어떻게 이 사업을 하게 됐나.
“서울 어느 곳에나 공실이 존재한다. 비싸고 좋은 공간도 비어 있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래서 임대료가 비싸 매장을 내기 어려운 브랜드들에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2018년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공사 예정지를 발견하면서다. 그 공간을 빌려 22일간 북 카페를 운영했다. 특별한 인테리어 없이 공사장 자재들을 활용해 매장을 꾸몄는데, 1만8000여 명이 방문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적절한 공간을 찾아 임차한 뒤 일정 기간 브랜드에 임대하고 함께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프로젝트렌트를 운영하게 됐다. 현재 서울 시내에 공간 8곳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도 인기가 상당했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절정이던 2020년 6월부터 점포 방문자가 급증했다. 성수동 프로젝트 렌트 2호점의 경우 하루 평균 유동 인구가 2019년 1567명에서 이듬해 2620명으로 증가했다. 2020년 3·4분기만 보면 하루 평균 4000명 이상의 유동 인구가 발생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유통업계가 ‘오프라인의 종말’을 외치던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이유가 뭔가 하니 ‘재미’였다. 당시 무속인과 점집 ‘성수당’을 열고 점을 봐주는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신점 예약이 한 시간도 안 돼 마감됐다. 코로나19라는 불안한 시기, 음지에 있던 무속 신앙을 꺼내 재해석했더니 소셜미디어(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이다. 콘텐츠가 재미있으면 위험을 감수하고도 찾아오더라. 양(Quantity)보다 질(Quality)이 중요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기억에 남는 팝업스토어를 꼽는다면?
“노출 면에선 앞서 소개한 ‘성수당’을, 품질 면에선 ‘평양슈퍼마케트’ 팝업스토어를 꼽을 수 있다. 2018년 5월 2주간 진행한 평양슈퍼마케트는 ‘평양에서 잡화점을 낸다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으로 만든 팝업스토어다.
프로젝트 렌트의 사업을 소개할 겸 꾸민 자체 기획 매장이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할 법한 파스텔 색감의 북한 슈퍼마켓 물건들을 전시하고 판매했다. 실제 북한에서 파는 건 아니고, 탈북자가 직접 만든 수제 과자와 사탕 등을 전시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가나초콜릿하우스’와 ‘어메이징 오트 카페’도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가나초콜릿하우스’는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다녀갈 정도로 그룹 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기획했나.
“한국인들은 초콜릿을 언제 먹나 살펴보니 딱 세 번 먹더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누가 사주면 먹는 거지, 내가 사 먹고 즐기는 디저트가 아니었다.
그래서 ‘가나’라는 브랜드보다 ‘초콜릿’을 즐기는 경험을 선사하기로 했다. 유명 파티시에, 바리스타와 함께 다섯 가지 코스의 초콜릿 디저트와 음료를 만들고, 한정판 기념품(굿즈)과 DIY 클래스도 열었다. 그 결과 SNS에서 ‘초콜릿’이라는 키워드를 장악했고, 연장 운영까지 했다. 40여 일간 약 1만 명이 방문했고, 1인당 체류시간은 60~90분에 달했다.”
기업들과 협업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큰 방향은 함께 협의하고, 이후로는 프로젝트렌트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데 대부분 믿고 맡겨주는 편이다. ‘가나초콜릿하우스’도 그랬다. 간혹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업체들도 있다. 예컨대 매출이 잘 나오는 매장을 만들어 달라는 식이다. 그럴 땐 정중히 거절한다.”
소비자들이 팝업스토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즐거우니까. 백화점에 가면 피곤해하는 남성들도 팝업스토어에 가면 재밌어한다. 소비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갔어도 98%의 오프라인 매장은 팔 궁리만 하지, 고객을 즐겁게 할 궁리를 하지 않는다. 결국 오프라인에서 다른 요소를 찾던 사람들은 콘텐츠와 오락 요소를 지닌 팝업스토어를 낙점했다. 좋은 콘텐츠가 트래픽을 움직이게 하는 본질이 된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 팝업스토어의 기능은.
“팝업스토어라는 단기 플랫폼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브랜드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 하나를 내는 데 많은 돈이 든다. 20평짜리 매장을 낸다고 가정하면 권리금, 보증금, 인테리어비, 직원 채용 등으로 3~4억원은 써야 한다. 어렵게 매장을 열어도 장사가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작은 브랜드의 경우 잘못하면 무너질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서 존재감이 생기면, 온라인 트래픽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더 많이 소비한다는 결과도 있었다.
요즘 소비자들에겐 없는 게 없다. 그런데도 즐길 이유, 사야 할 이유를 줘야 하는 게 공급자와 소비자와의 관계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비자가 즐길 수 있도록 당겨주는(Pull) 역할을 하는 게 팝업스토어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팝업스토어가 성공하진 못하는 거 같다. 팝업스토어의 성공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팝업스토어의 본질은 소비자와 관계 만들기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Push’ 마케팅은 한계가 있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데 자꾸 DM(다이렉트 메일)을 보내는 건 스토킹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기업들이 수십억 원을 들여 연 팝업스토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좋은 팝업스토어는 후기를 보면 안다. 매일유업과 4주간 진행한 ‘어메이징 오트 카페’의 경우 약 1만2000명이 방문했는데, 초반 2주간은 기대한 만큼 트래픽이 안 나왔다. 귀리 음료, 비건 디저트에 대해 생소해하는 분들이 많은 데다, 여러 사정으로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 마케팅을 진행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한 번 다녀간 분들이 만족도 높은 피드백을 내놓으면서 3~4주 차에 방문객이 급증했다. 전체의 70%가 이 시기에 방문했다. ‘가나초콜릿하우스’ 역시 ‘초콜릿에 진심인 곳’이라는 후기가 많았다.”
팝업스토어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주의할 점은?
“팝업스토어는 목적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소통이다. 또 새롭기만 해선 안 된다. 이유를 담아야 한다. 팝업스토어를 찾은 방문객들이 SNS에 후기를 쓰려는데 쓸 게 없거나, ‘왜 했지?’라는 말이 나오면 실패한 것이다.
브랜드 이해도를 바탕으로 경험을 복합적으로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침대 회사 시몬스의 그로서리 스토어는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시몬스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그사이 영업 방식을 바꿔 매출까지 동반 상승시켰다.”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팝업스토어의 활성화는 곧 부동산의 유동화를 의미한다. 예전엔 일정 기간 돈을 지불하고 상가를 점유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젠 매장이 필요할 때만 돈을 내고 공간을 쓰는 기업들이 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가의 가치는 콘텐츠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입지가 아니라 얼마나 즐거운 경험을 주느냐가 트래픽을 모으는 관건이 될 것이다.”
향후 계획과 목표는.
“궁극적으로 OMO(Online Merge with Offline·온오프라인 통합)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목표다.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 가진 즐거운 경험을 온라인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소통은 물론 소비까지 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또 이달 중 부산에서 팝업스토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해외 지점도 구상 중이다. 한국의 좋은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고, 해외의 좋은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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