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다시 붕어빵을 불러내다
청년 사장은 SNS로 홍보하며 메뉴 차별화
“부캐시대 경험치 쌓아요”
[비즈니스 포커스]
1930년대 한국에 들어와 서민들의 점심 식사와 겨울 간식으로 자리 잡은 붕어빵.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잠시 대로변에서 사라졌던 붕어빵. 붕어빵은 1997년 말 외환 위기와 함께 돌아왔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다시 붕어빵을 팔았다. 그래서 혹자들은 붕어빵 판매량이 불황의 지표라고 한다. 2000년대 다양한 간식거리가 쏟아져 사라질 위기에도 처했지만 이번 겨울 다시 돌아왔다.
올겨울 붕어빵을 재발견한 것은 젊은이들이다. 부캐(부캐릭터) 또는 생업으로 젊은이들이 굽고 줄 서 먹는데 거리낌이 없는 다른 젊은이들이 순서를 기다리는 소비자가 됐다. 또 다른 젊은이는 붕어빵 점포를 찾는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했다.
◆붕어빵을 찾고 굽는 청년들
1월 6일 오후 4시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고등학생, 대학생, 반차를 낸 직장인 등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저녁을 먹기 전 간식거리를 찾기 위해 레이더를 켰다.
대로변엔 겨울철 국민 간식인 ‘붕어빵’을 파는 노점이 곳곳에 보였고 가로수길 안에는 포차 등 가게에서 붕어빵을 추가로 팔기도 했다. 그중 유튜브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봤던 ‘붕어빵 신사’를 찾았다. 인근에 있는 붕어빵 점포를 표시해 주는 앱 ‘가슴속3천원’을 켰다.
섭씨 영상 6도로 다소 포근한 날씨,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붕어빵 신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15분을 기다린 뒤 메뉴판을 볼 수 있었다. 붕어빵의 가격은 예상보다 높았고 메뉴는 참신했다. 가장 잘 알려진 팥과 슈크림 붕어빵은 한 개에 1500원, 고구마와 애플파이 붕어빵은 각 3000원, 페로로쉐 초콜릿 붕어빵은 3500원이었다. 치즈와 소시지가 들어간 ‘붕신 붕어빵’은 4000원으로 가장 비쌌다. 슬그머니 점포 안을 들여다봤다. 6.6㎡(2평) 남짓한 자투리 점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대신 젊은 사장님이 열심히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붕어빵 신사의 사장 김민재(24) 씨는 대학교 휴학생이다. 무용학을 전공하고 연극학을 준비하고 있다. 군 복무를 앞둔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장사를 결심했다. “겨울철만 해볼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했죠. 붕어빵이 가장 쉽고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열 수 있을 때 열고 닫을 수 있을 때 닫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어요. 본캐(본래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부캐 시대에 딱이죠!”
◆MZ가 붕어빵 장사를 하는 방법
젊은 사장님들은 누룽지·호두·초코 슈크림 등 차별화된 메뉴를 개발하는 동시에 재료 준비부터 영업 노하우까지 운영 전 과정을 SNS에 공유해 입소문 효과를 노리고 있다. 김 씨는 홍보를 위해 가게 이름과 지역 선정에 공을 들였다. “붕어빵 신사를 줄이면 ‘붕신’인데 힙한 단어로 젊은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주려고 했습니다. 포장지에 ‘붕신’이란 단어를 새긴 것도 이 때문이죠. ‘붕신 붕어빵이 뭔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입지 선점도 전략적이다. 동네 주민·회사원·외부인 등 3가지를 고려한다. 대개 붕어빵 장사는 낮 12시에 시작해 밤 8~10시에 끝난다. 점심 시간인 오후 12~2시, 학원을 가거나 직장인 간식 시간인 오후 3~5시, 퇴근 시간과 외부인이 몰려드는 오후 6~8시에 가장 많이 팔린다. 특히 외부인을 고려한다면 신사동 가로수길과 성수동 등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발길을 옮기는 곳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김 씨는 점포를 냈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이때는 자릿세를 낸다며 ‘붕어빵 장사 자리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돌리거나 아는 형, 아는 언니의 도움으로 식당이나 카페 앞에 노점을 열기도 한다.
◆창업은 어떻게 하나
붕어빵 창업은 진입 장벽이 낮다. 프랜차이즈나 대여 업체를 이용한다면 무자본 창업이 가능하다. 체인 업체에서 붕어빵 틀, 빵 거치대 등 장비부터 마차까지 공짜로 빌려준다. 창업자는 매일 붕어빵의 반죽과 통팥앙금 등 재료만 사면 된다. 재료와 그 외 필요한 물품 등 예상되는 초기 비용은 약 40만원 정도다. 제조 기술도 쉽다. 붕어빵 틀에 반죽과 팥앙금을 붓고 한 번씩 뒤집으며 5분 정도 구우면 된다.
김 씨처럼 직접 기계를 사고 밀가루·슈크림 등의 재료를 따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기계를 새것으로 준비하면 약 150만~170만원이 든다. 당근마켓‧중고나라 등 중고 장비로 대체하면 비용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다만 마차 제작, 점포 입점, 간판 제작 비용 등을 고려하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붕어빵 한 개당 수익은 재료와 가격에 따라 300~900원 정도 남는다. 반죽 10kg+통팥앙금 10kg으로 붕어빵을 250~300개 만들 수 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프랜차이즈를 이용하면 20만원 정도 든다. 직접 산다면 재료 값은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 가스 요금과 자릿세는 별도다.
◆주의 3가지, 단기 장사‧노점 단속‧물가 상승
붕어빵 창업은 초기 재료비와 세팅비 등을 제외하면 큰 자금이 필요 없다. 하지만 가볍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우선 붕어빵은 10월에서 시작해 3~4월이면 그만둬야 하는 반년짜리 장사다. 부캐나 한 번의 경험이 아닌 지속적인 생존 수단이라면 나머지 반년에 대한 생존 전략을 짜는 것이 필수다. 프랜차이즈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기계나 마차 등에 대한 보관 장소도 고민거리다.
노점 단속도 문제다. 아무 데서나 장사하다가 한 번 단속되면 과태료로 100만~200만원씩 내는 것은 물론이고 마차도 수거당하기 때문이다. 단속이 점점 심해지는데 유동 인구가 많은 역사 주변에 노점을 열기도 쉽지 않다. 서울시는 2018년 노점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거리 가게 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노점상을 열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고물가에 예년처럼 1000원에 3~4개를 팔기엔 수지타산도 맞지 않는다. 밀가루·식용유·설탕 등 밑재료부터 액화석유가스(LPG)까지 값이 뛰지 않은 게 없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5년 전보다 주재료 5가지 가격이 평균 49.2% 상승했다. 밀가루(47%), 식용유(33%), LPG(27%), 설탕(21%) 등의 재료 값이 줄줄이 올랐고 외국산 붉은 팥(800g) 가격은 두 배 올라 6000원이다.
이에 따라 붕어빵 가격도 인상됐다. 올해 붕어빵 2개 가격은 1000원 수준이다. 강남 등 지역에 따라선 개당 1000~1500원인 곳도 있다. 재료가 추가로 들어간 프리미엄 붕어빵은 1개에 3000~4000원에 달한다.
“요새 어렵죠. 그래서 방법을 찾고 있어요. 가격이 높은 만큼 팥을 더 넣거나 호두·고구마 등 색다른 재료를 넣어 젊은 친구들도 발걸음 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4년째 강남역 대로변에서 여동생과 함께 붕어빵 장사를 하는 이한덕(가명‧50대) 씨의 말이다.
올겨울 붕어빵의 재발견이 불황의 지표가 아니라 부캐와 레트로 현상의 한 단면이기를 기대해 본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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