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은 옛말”... 고물가·경기침체에 얼어붙은 전통시장
부천 원미종합시장·서울 관악구 신원시장 한산
”경기 안 좋은데 날씨도 추워 발길 끊겨”
지난 17일 경기 부천시 원미종합시장에서 13년 동안 과자·만두 등을 파는 한성수(68)씨는 2평 남짓 가게에 앉아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씨는 얇은 천막을 점포에 둘러 겨울 바람을 막고 온열기를 쬐며 한산한 시장을 바라봤다. 그는 “요즘엔 ‘설 대목’이랄 게 없다”며 “10년 전과 비교하면 설 전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이어서 “경기가 안 좋은데다 날씨도 추워 시장에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있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꺾인 데다 기온도 떨어져 시장을 찾는 발길이 뜸하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설 대목 기간이 대폭 줄거나 평소와 비슷한 수준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오후 1시쯤 원미종합시장에서 문을 연 점포 96곳 중 손님을 대하고 있는 점포는 12곳에 불과했다. 손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점포 상인들은 점심을 먹거나 자리에 앉아 TV·스마트폰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4년째 원미종합시장에서 어물전을 운영하는 A(54)씨는 지난해 추석 때 1팩(400g)에 5000원 받던 동태포 가격을 올 설에는 6000원으로 올렸다. A씨는 “생선 도매가격이 지난 추석 대비 30% 정도 올랐다”면서 “하지만 손님들한테 팔 때는 그만큼 올리면 사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18일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이달 9일 기준 전통시장에서 4인 가족이 차례상을 차렸을 때 발생하는 비용은 25만4500원. 지난해 설(24만4500원)과 비교하면 4%가 늘었다. 한국물가정보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설 차례상 물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생산량이 증가한 과일류, 견과류 등 농산물 가격은 내렸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축산물, 그리고 과자류와 같은 공산품 가격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서울 관악구의 대표 전통시장인 신원시장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7일 오후 130여개 상점이 몰린 시장에서 손님을 맞은 곳은 3곳 중 1곳꼴이었다. 한 어물전 상인은 “여기 내놓은 생선이 손님보다 많다”며 건너편 상인에게 걱정 섞인 농담을 건넸다.
신원시장에서 24년째 떡집을 운영중인 이모(63)씨는 “지난해 설 대목보다도 손님이 뜸하다”며 “떡에 쓰이는 팥이나 콩이 3년 전엔 한 가마니에 20만원이었다면 지금은 40만~50만원 선이다. 설탕값도 3년 전에 1만1000원이었으면 지금은 2만원이 넘는다”고 전했다.
신원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권모(61)씨는 “명절 대목엔 전을 부치는데 재료비가 많이 올라서 힘들다”며 “러시아산 동태가 1년 전 10kg에 6만원이던 게 지금은 8만3000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이어 “식용유도 2년 전 10리터에 3만5000원 선이었다면 지금은 6만~7만원까지 올랐다”고 덧붙였다.
축산물품질평가원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거리로 쓰이는 소고기 양지(1+등급, 100g 기준) 부위의 소비자가격은 지난 16일 기준 6577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6277원)와 비교하면 약 4.8% 올랐다. 나물반찬에 쓰이는 시금치(상품, 1kg 기준) 가격은 6850원에서 7655원으로 약 11.8% 올랐다. 반면 과일 가격은 내렸는데 사과(상품, 10개)는 2만6893원에서 2만5644원으로, 배(상품, 10개 기준)는 3만4151원으로 2만8736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상인들은 과일 가격이 내렸다고 과일 가게 매출은 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울 강서구 까치산시장에서 20년 넘게 청과물 가게를 운영한 백모(63)씨는 “과일 도매가격 단가가 5000원가량 떨어졌지만 매출은 그날이 그날”이라며 “명절 직전이라고 매출이 크게 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축산물을 파는 상인들도 한숨을 내쉬기란 마찬가지다. 원미종합시장에서 30년 넘게 정육점을 하는 구지달(65)씨는 “손님들이 한우와 돼지고기 가격이 올랐을 때를 생각해 가격이 조금 내려간 지금도 많이 찾지는 않는다”며 “오후 6시 이후엔 발길이 뚝 끊긴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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