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중국 스파이 걷어내야" 한국 반도체 전설의 경고

오문영 기자 2023. 1. 1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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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동 박사가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 내 한 카페에서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오문영 기자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선두에 서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잘 커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중국의) 기술 탈취를 막는 것이죠."

지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내 한 카페에서 만난 강기동 박사(90)는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강 박사는 오늘날 메모리 강국의 기초를 세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아버지다. 삼성 반도체의 전신인 한국반도체를 창업했고,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 반도체도 강 박사의 자문으로 시작했다.

강 박사는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이자 기술력이다"라며 "기술 유출 보호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 내부에만 제가 알기로만도 중국 스파이가 수백명, 300명은 넘게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전 정부(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우리 기업 내부에 있는 산업 스파이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당부했다. 강 박사는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와서 경제적·군사적으로 석유보다 강력한 무기가 됐다"면서 "그 주도권 쟁탈을 위해 세계 강국들이 사활을 건 투쟁을 눈앞에서 벌이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강 박사는 이어 "국내는 물론 해외 반도체 관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대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일본과 대만은 태평양 지진대 위에 있기 때문에 영원한 지진 위협에 노출돼 있어 한국이 가진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기술을 바탕으로 '실시간 국가 의사결정 인공지능 운영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도 전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이 약세를 보이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 박사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것이 시스템반도체"라며 "오일쇼크라는 극한 상황에서 한국반도체가 만들었던 시계용 반도체(VLSI) 칩은 구미 선진국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없어서 못 파는 대박을 터트렸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메모리 강국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이외의 분야가 더 크다"면서 당시 기술력을 유지·발전시키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4주간 한국 머물 예정…"많은 사람과 얘기 나눌 것"
강 박사는 이날 오후 5시14분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4년여 만의 한국 방문이다. 4주간 한국에 머물며 C-MOS(상보성 금속산화물 반도체) 공정을 개발한 부천공장,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강기동 박사가 지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항공편으로 입국했다. 옛 한국반도체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사진=오문영 기자

강 박사는 "남아있는 삶 전부를 한국 반도체 산업에 바칠 각오"라며 "1973년에 한국에 들어와 첨단반도체 역사의 시작을 만들었던 것처럼 반도체와 미래기술 연구를 바탕으로 미래에 한국을 세계 2위 강국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보고 있는 한국 반도체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 했다.

잘못 알려진 한국 반도체 역사도 바로잡고 싶다고 전했다. 타 국가와 다르게 한국 반도체의 뿌리 역사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설명이다. 강 박사는 본인에 대해서도 "실패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면서 "(한국반도체) 경영을 잘못하지도 않았고, 부도나 파산된 적도 없다. 삼성에 인수된 것도 대주주였던 이가 위장 부도를 내기로 하면서 일어난 일"이라 말했다.

강 박사는 195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주립대 반도체 연구소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모토로라에 입사해 반도체 연구소를 직접 꾸리고 최첨단 반도체 생산 기술을 연구하며 당시 반도체 분야를 선도했다.

한국에 반도체 제조 기술을 이식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던 강 박사는 1973년 미국 내에 ICII 사를 설립하는 동시에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 주식회사를 세웠다. 3인치 웨이퍼 가공라인을 건설한 순간은 한국에 반도체 산업의 씨앗을 뿌린 역사적 장면으로 남아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게 회사를 매각한 뒤로도 2년간 삼성 반도체(현 삼성전자) 사장을 맡으며 한국 최초의 시계용 반도체 칩 생산을 주도했다.

미국(네바다주 리노 외곽에 거주)에 돌아간 후에도 반도체 사업에 뜻을 품은 한국 기업들의 조언 요청에 응하며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 설립에 관여했다. 하이닉스라는 이름 역시 강 박사가 직접 지었던 이름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회장이 회사명에 현대란 이름이 들어가길 원하면서 채택되지 못했었다는 후문이다.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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