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신고 2번, 죽음 못 막았다…‘피해자 의사 존중’의 덫

이주빈 2023. 1. 1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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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부산에서 20대 남성 ㄱ씨가 배우자를 살해한 뒤 도주했다가 다음날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두차례 가정폭력 신고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폭력처벌법에는 검사가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하거나, 법원이 가정보호사건 관할 법원에 사건을 송치할 때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경찰이 이를 근거로 피해자 보호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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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피해자 억압받는 상황 뻔한데도
“분리조치 원치 않아” 듣고 소극 대처
전문가 “피해자 의사 존중 조항 없애야”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일 부산에서 20대 남성 ㄱ씨가 배우자를 살해한 뒤 도주했다가 다음날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두차례 가정폭력 신고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과 함께 가정폭력처벌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해당 사건 내용을 보면, 경찰은 사건 발생 20일 전부터 피해자 등으로부터 가정폭력 신고를 받았다. 피해자는 12월15일 ‘어제 남편에게 폭행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나흘 뒤에는 피해자의 동료가 ‘피해자에게 감금당하고 있다고 연락해 왔다’며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등의 피해자 보호조처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분리조치를 원하지 않는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관련 법 조항을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정폭력처벌법에는 검사가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하거나, 법원이 가정보호사건 관할 법원에 사건을 송치할 때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경찰이 이를 근거로 피해자 보호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사법기관이 가정폭력의 특수한 피·가해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탓에 해당 조항이 사건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잘못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법원(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지난해 9월5일 경찰이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긴급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 피해자로부터 분리조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가정폭력처벌법의 ‘피해자 의사 존중’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팀장은 “피해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기 의사를 말할 수 없다면, 해당 조항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게 될 뿐”이라며 “피해자 보호책임은 피해자 자신이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0일 논평을 내 “가정폭력처벌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피해자 의사 존중’ 조항 삭제와 더불어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 등을 ‘가정의 평화와 안정’이 아닌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 보장’을 중심으로 개편할 것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해 보호처분(상담 위탁, 사회봉사·수강명령 등)이 아닌 형사처벌 원칙으로 할 것 등을 주장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미국은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가해자를 정확히 식별해 반드시 체포하도록 하는 ‘의무체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가정폭력은 보복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국가가 책임지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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