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우리쌀로 만드는 우리술…낡은 규제 손질로 시장규모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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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1㎏으로 통상 25도 증류식 소주 5병(375㎖)을 빚는다.
증류식 소주 1병 가격을 1만원이라 하면 약 5만원의 조수익을 내는 셈이다.
쌀 1㎏ 평균 소비자가격(3000원)의 약 16.7배다.
지난해 <원소주> 를 출시해 증류식 소주 바람을 일으킨 강원 원주의 양조업체 원스피리츠는 올해 술 제조에 사용할 쌀 5200t을 원주농협과 계약했다. 원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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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에서 해법 찾는 쌀 문제
약주 등 대부분 ‘종가세’ 적용
국산 원재료 쓸수록 세금 늘어
‘종량세’로 바꿔 생산자 부담 ↓
지역특산주 인정 범위 완화를
재료 신뢰도 제고방안도 필요
쌀 1㎏으로 통상 25도 증류식 소주 5병(375㎖)을 빚는다. 증류식 소주 1병 가격을 1만원이라 하면 약 5만원의 조수익을 내는 셈이다. 쌀 1㎏ 평균 소비자가격(3000원)의 약 16.7배다. 최근 초과생산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쌀은 누가 뭐라 해도 한국 농업의 전략작물이다. 음식문화와 융합, 수출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전통주를 살려야 쌀이 산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지난해 <원소주>를 출시해 증류식 소주 바람을 일으킨 강원 원주의 양조업체 원스피리츠는 올해 술 제조에 사용할 쌀 5200t을 원주농협과 계약했다. 지난해 원소주를 편의점에 입점시켰고, 앞으로 수출까지 하면 연간 400만병(375㎖ 기준)을 판매할 것으로 내다봐서다. 이 업체는 100% 국산쌀만 쓴다. 이같은 전통주 업체 20곳이 생겨 소비자 입맛을 잡으면 연간 10만t의 쌀을 소비할 수 있다. 2021년 쌀 초과생산량(27만t)의 40% 가까이를 해결할 수 있단 의미다.
◆전통주 프리미엄 ↑, 낡은 제도 손봐야=한국전통민속주협회에 따르면 2021년 전통주 출고량은 전체 주류의 1%를 넘어섰다. 2010년대 중반 시장점유율(0.3%)에 비춰보면 큰 성과다.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전통주법)’에 따라 전통주는 민속주와 지역특산주로 나뉜다. 민속주는 무형문화재나 대한민국식품명인이 전통방식으로 빚는 주류고, 지역특산주는 양조장 소재지나 인접 시·군·구에서 생산한 국산 농산물로 만든 주류다. 전통주는 주세 50% 감면과 온라인 판매 혜택을 받는다.
주목할 건 전통주의 프리미엄화다. 농림축산식품부 ‘2021 주류 트렌드’에 따르면 대중 인기 주류 트렌드로 ‘홈술(51.5%)’ ‘즐기는 술(38.0%)’ '국산쌀로 만든 술(36.8%)’ 등이 상위 5위권(중복 응답)을 차지했다. 프리미엄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의사금액도 2017년 평균 2447원에서 2020년 3055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아직 주류시장의 99%는 희석식 소주, 맥주, 수입쌀로 만든 막걸리 등이 차지하고 있다. 전통주 업계 전문가들은 “좋은 술을 찾는 홈술 문화와 맞물려 전통주 붐이 이제 막 시작한 단계로 낡은 규제를 손봐 성장세를 지속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통주에 부과하는 주세를 현행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종가세는 포장재를 포함한 주류 출고가에 일정 비율의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고, 종량세는 주류 물량(ℓ)에 정액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현재 맥주·막걸리에만 종량세가 적용되고 약주, 청주, 증류식 소주 등 대다수 전통주에는 종가세가 부과된다.
우리쌀로 증류식 소주를 생산하는 전북 진안 태평주가의 이영춘 대표는 “종가세를 적용받으면 국산 원재료나 고급 포장재를 사용할수록 세금이 올라간다”며 “전통주 업체 입장에선 품질 고급화, 제품 개발에 부담도 커진다”고 토로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도 “전통주인 증류식 소주에 부과하는 주세가 출고가의 36% 수준인데, 국산 고급 원료를 쓸수록 제조자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통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라 하더라도 연간 주세를 감면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물량이 주종별로 100∼200㎘로 제한되는 점도 문제다. 김희준 원스피리츠 매니저는 “증류식 소주 기준으로 연간 100㎘를 초과하는 출고량에 대해선 주세 감면을 못 받는다”며 “국산 원료 소비를 촉진하려면 이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산 원료 사용할 환경 만들어야=‘지역특산주’의 원재료 조달 범위도 논란거리다. 지역특산주로 인정받으려면 술의 주원료 3가지를 양조장이 소재한 지역 또는 인접한 시·군·구에서 조달해야 한다. 예컨대 경기 안양시에서 김포산 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지역특산주로 인정을 못 받는다.
서울에서 국산쌀 막걸리를 빚는 고성용 한강주조 대표는 “쌀은 서울 강서농협에서 공급받지만 배·허브류 등 나머지 재료는 서울 인접 시·군에서 구하기 쉽지 않다”며 “주재료 이외 재료는 다른 지역산을 허용하면 다양한 전통주가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봉석 한국전통민속주협회 사무국장도 “비율이 5% 이하인 원료는 주원료에서 제외하고, 인접 지역에서 생산하지 않는 원료는 국산 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산 재료에 신뢰도를 높일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명 칼럼니스트는 “프랑스 와인에 적용하는 ‘원산지명칭통제(AOC)’를 참조해 원료 생산지별로 인증방식과 가격에 차등을 두자”고 제안했다. AOC는 원료 조달 범위를 ▲양조장 소재 마을 ▲양조장 인접 지역 ▲국토 전체로 범위를 나눠 가격을 차등화하는데, 우리도 이를 참고해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수입쌀로 만든 막걸리를 전통주로 인정하면 전통주 가치 자체가 퇴색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뒤따른다. 현재 수입쌀로 막걸리를 생산하는 일부 업체들은 수출을 위해 모든 막걸리를 전통주로 인정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업체들은 수출을 위해 전통주 명칭만 쓰겠다고 하지만 전통주에 편입된 이후에는 세제 혜택 등을 추가로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대표도 “전통주시장 크기를 무리하게 키우려다 본래 가치를 훼손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며 “국산쌀을 쓰는 주류에 그에 걸맞은 지원을 확대하는 게 근본적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김해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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