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새장 속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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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자유롭다고 표현한다.
새장을 만들어 그 속에 십자매 한쌍을 넣어두고 보며 즐기는 취미이다.
왜 그럴까? 전자는 새장 속에 오래 갇혀 애완조류로 자라다보니 본래 가졌던 자유로운 야성은 없어지고 현실에 안주한다.
"사랑은 자유를 원하는 한마리 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늘 전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결코 그것을 새장 속에 가두지 말라. 결코 사랑에 어떤 한계를 부여하지 말라." 이 말은 사랑이 자유고 자유가 없는 새장 속의 새는 불행하다는 뜻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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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났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자유 추구하던 히피족 대유행
속박 저너머에 행복 있다 여겨
여기 내 눈엔 이상하고 무질서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자유롭다고 표현한다. 새도 철 따라 옮겨 다니는 새도 있고 아예 터를 잡아 한곳에 머무는 새도 있다. 한곳에 머무는 새라면 그게 새장은 아니겠지만 크게 생각해보면 그 또한 새장에 갇혀 사는 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애완동물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당시에는 십자매를 기르는 게 유행이었다. 새장을 만들어 그 속에 십자매 한쌍을 넣어두고 보며 즐기는 취미이다. 새장에 오래 있다 보면 새장 속에 익숙해져서 새장 문을 열어 두어도 나갔다가는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야생 조류는 새장 속에 가두어 둔다고 한들 틈만 나면 탈출해 돌아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전자는 새장 속에 오래 갇혀 애완조류로 자라다보니 본래 가졌던 자유로운 야성은 없어지고 현실에 안주한다.
오쇼 라즈니시(Osho Rajneesh·1931∼1990)가 한 말이 생각난다. “사랑은 자유를 원하는 한마리 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늘 전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결코 그것을 새장 속에 가두지 말라. 결코 사랑에 어떤 한계를 부여하지 말라.” 이 말은 사랑이 자유고 자유가 없는 새장 속의 새는 불행하다는 뜻도 된다. 크게 생각하면 사람들도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 우주 속 작은 지구에 갇혀 살고 있으니 새장 속의 새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다. 둘만 모여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약속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약속하고 사는 것으로 두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사람으로서 절대로 깨뜨려서는 안된다고 하는 하한선으로서의 법이다. 이를 어기면 벌을 받게 된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규범이다. 이는 사람 처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법률처럼 기준을 정하고 일괄해서 처벌할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인 지탄은 받을지언정 법률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두가지 모두 약속이란 하나의 새장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서는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든 법이다.
사람들은 휴일을 맞으면 집을 벗어나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새장 밖이 그리워서 그런 것이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새장 속인 집으로 돌아와 하는 말 가운데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집만큼 좋은 데가 없어. 집 나가면 고생이야.” 이 말은 내 자신이 저 새처럼 관습·법·규범이라는 창살 속에 갇혀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모두들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자면 서로 약속한 속박이 있기 때문에 이 속박 속에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장이다. 그런데 이 새장을 마땅치 않게 여겨 항상 일탈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60∼1970년대에 걸쳐 한때 세계적으로 히피족이 유행했다. 베트남전쟁 무렵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원해 전세계 청년층에게 확산되어 하나의 문화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히피라는 어원을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행복(Happy)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인위적인 속박을 벗어나고자 했으니 그 어원이 가장 비슷할 것 같다. 행복의 근원이 자유로움에 있다고 생각한 히피는 그 당시 확실한 청년문화로 자리 잡았고 여러 연령층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나는 1982년 네팔의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카트만두 시내에서 히피족을 처음 만났다. 옷차림이나 행동들이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습관화되어 살고 있던 내 눈에는 자유로움이라기보다는 무질서하고 이상한 사람들로 생각됐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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