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재수 없고, 걸려도 처벌 없고…종이호랑이 근로감독 어쩌나

최정훈 2023. 1. 18. 05: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용부, 2023년도 근로감독 종합계획 발표
올해 임금체불·포괄임금 오남용 등 5대 불법·부조리 집중
노사 법치주의 확립한다지만…걸려도 처벌 없는 근로감독
고용부 “처벌이 능사 아냐”…“노사 법치 이중잣대 벗어나야”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정부가 올해 사업주의 임금체불과 포괄임금 오남용 등 위법 행위에 대한 근로감독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주52시간제 유연화 등 노동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선 노사 법치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근로감독 대부분이 처벌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균형 있는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선 근로감독의 처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7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SSG 김포 물류센터에서 열린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 현장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올해 임금체불·포괄임금 오남용 등 집중 근로감독

고용노동부는 17일 ‘2023년 근로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계획에는 노동개혁 추진과정에서 청년들이 우려하는 5대 불법·부조리 근절을 위한 감독에 집중할 계획이라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5대 불법·부조리는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직장내괴롭힘 △불공정채용 등이다.

먼저 고용부는 주52시간제 유연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포괄임금으로 인한 ‘공짜 야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위법 의심 사업장에 대해 기획감독을 실시하고, 하반기에도 추가적인 감독에 나설 계획이다. 고용부는 포괄임금 오남용에 대한 기획감독을 오는 3월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업 등 사업장에서 실시하고 있다.

2023년도 근로감독 추진방향(자료=고용노동부 제공)
또 조선업 사내 하청업체 등 임금체불 취약 분야에 대해서 임금체불 신고사건이 접수되었을 때, 피해 정도가 크거나 고의적인 경우 해당 사업장에 대해 즉시 근로감독을 착수하고, 제보 등으로 부당노동행위가 의심되는 사업장을 인지한 경우, 선제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고도 반복적으로 조사하지 않는 사업장에는 즉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고용부는 경기둔화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맞춤형 예방 감독도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고령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정기감독을 새롭게 시행한다. 또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노무관리지도 역량을 집중하고, 입사를 앞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적인 노동법 교육과 캠페인을 강화한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동 개혁을 완수하려면 노사 법치를 확립하는 근로감독을 통해 공정한 노동시장을 구축해야 한다“며 ”(경기둔화에) 취약한 노사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강화하는 근로감독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사↘ 법치주의 확립”…종이호랑이 근로감독 벗어나야

올해 고용부가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사업주에 대한 근로감독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고용부는 근로감독을 통해 사용자의 위법행위를 적발할 경우, 곧바로 사법처리하지 않는다. 위법행위 정도에 따라 2주나 한 달 기간을 두고 시정명령을 한다. 그러고도 시정이 되지 않으면 사법 처리 절차를 밟는다. 드물게 위법행위가 심하거나 악의적이면 시정명령 없이 곧바로 사법처리하는 사례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고용부는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498개 업체에 대해 장시간 노동 등에 대해 근로감독을 했고, 470곳(94.4%)이 근로기준법을 한 건 이상 위반한 것을 확인해 시정지시와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런데 고용부가 적발한 2252건 법 위반사항 가운데 2249건(99.9%)에 대해선 시정지시를 내렸다.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기업이 정해진 기한 내에 잘못을 시정하기만 하면 법이 정하는 처벌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지 않는다. 이에 일부 중소기업계에선 근로감독으로 위법 사항이 적발되는 건 운의 문제라며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고, 걸리면 시정 기간 내 고치면 되는 일이라고 여기기 일쑤다. 근로감독이 임금체불이나 장시간 노동 등을 줄이는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자리 창출 등으로 우수기업으로 꼽혀 혜택으로 정기 근로감독이 면제된 기업에서 노동법 위반사항이 다수 적발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대변한다. 실제로 고용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수기업 1359곳 중 227곳(16.7%)이 노동관계법을 위반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감독 후 무조건 벌금과 과태료 처분을 하는 게 재발방직와 근로자 권익 보호에 좋은 것인지 의문”이라며 “다만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엄하게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으뜸기업’으로 선정되더라도 정기감독을 받게 하는 등 정기감독 면제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하려면 기소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과거부터 노동법 위반에 대해서는 기소가 되지 않으면서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너그러워진 관행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에게는 강경하게 법치주의를 말하면서 사용자에게는 편의적으로 접근하는 이중잣대 행정을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정훈 (hoonism@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