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다른 농촌에 동물병원 생기도록 도울거예요”

서지민 2023. 1.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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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Zoom 人] 전남 장흥서 동물병원 운영하는 손서영 원장
서울 병원의 바쁜생활에 지쳐 귀촌
유기견 돌봐주다 주민 성원에 개원
마을위해 반려동물 무료 방문검진
버려진 동물들 구조활동에도 힘써
전남 장흥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손서영 원장(오른쪽)이 강아지를 진찰하고 있다.

“시골 동물병원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에요. 키우는 강아지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주저 없이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편한 의사가 되고 싶어요.”

손서영 원장(40)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에서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한다. 동물병원에 찾아오는 반려동물은 물론 병원까지 오지 못하는 동물까지 책임지고 치료한다. 병이 났는데 주인이 알아차리지 못해 집에 방치된 강아지, 주인을 잃고 외롭게 떠도는 고양이 모두 손 원장 손길을 거친다. 마을 주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손 원장을 찾는 이유다.

손 원장은 귀촌 전에 줄곧 서울에 살았다.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대형 동물병원에서 일했다.

그는 모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성공한 삶을 살면서도 항상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바쁜 일상에 치여 동물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집에서 저를 기다리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 가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여유가 없었죠. 가물에 콩 나듯 동물 보호소를 찾는 것 말고는 다른 활동을 할 짬이 나지 않아서 답답했어요.”

손 원장은 8년 전 장흥에 왔다. 처음부터 살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었다. 반려견 3마리를 키우는데, 이들에게 자유를 맛보게 해주려고 무작정 어렸을 때 자주 놀러 갔던 할아버지 댁으로 휴가를 왔다. 매일 산책하고 버려진 동물을 돌봐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다보니 어느새 본인의 지친 마음까지 회복됐다. 결국 서울 가는 일정을 미루다 어물쩍 눌러앉게 된 것.

“집 근처에 숲길이 나 있어서 반려견과 산책하기 좋아요. 주변에 인적도 드물어서 남 시선을 신경 쓸 일도 거의 없죠. 항상 딱 맞는 옷만 입던 서울과 다르게 이젠 옷도 널널하게 입고 신발도 편한 것만 신으면서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졌어요.”

손 원장이 동물병원을 개원한 건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때문이다. 이전엔 마을에 동물병원이 없어 차를 타고 한시간을 이동해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동물병원 가는 것에 엄두가 나지 않아 반려동물의 병을 키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한번은 옆집에 놀러 갔는데 개가 좀 아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왜 병원에 안 데리고 오셨냐고 하니까 ‘그 정도로 병원까지 가야 하는 줄은 몰랐네’라며 오히려 놀라셔서 제가 더 당황했죠. 이대로 둬선 안되겠다 싶어서 직접 나서게 된 거예요.”

손 원장은 동물병원을 비우는 날이 더 많다. 마을을 다니며 반려동물을 치료하느라 가만히 앉아 있을 틈이 없다. 손 원장은 방문 검진이야말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일절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치료를 끝낸 손 원장을 따라 나오며 손에 각종 선물을 쥐여 줬다.

“집에 주민들이 들려 보낸 선물이 한가득이에요. 직접 만든 밑반찬이나 향긋한 참기름이 두둑이 쌓여 있는데 볼 때마다 힘이 나죠. 맛있는 음식을 하시면 꼭 빼놓지 않고 저까지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처음엔 농촌 마을에서 도움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돌이켜보면 제가 도움받고 사는 게 훨씬 큰 거 같아요.”

손 원장은 자신이 직접 구조한 유기견을 포함해 30마리 넘는 강아지를 집 정원에서 키우고 있다.

손 원장이 바쁜 또 다른 이유는 유기견 구조 활동 때문이다. 농촌은 상대적으로 도시보다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하다. 중성화 수술이 보편화하지 않아서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동물이 많고, 이들은 대부분 버려진다.

“지금은 집에서 30마리 넘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요. 강아지마다 각자 사정이 있고 아픈 구석이 있으니까 내치질 못하겠더라고요. 이제는 없어선 안될 가족이 됐어요.”

손 원장의 목표는 다른 외진 시골 마을에도 동물병원이 생기도록 돕는 것이다. 지금 운영하는 병원을 잘 꾸려나가 농촌에서도 동물병원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손 원장. 소문이 나면 다른 지역에서도 새로 문을 여는 동물병원이 꾸준히 생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

“농촌엔 동물의료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요. 더 많은 수의사가 전국 방방곡곡에 병원을 차려 고통받는 동물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장흥=서지민·이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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