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멋진 어른이 되어가기
지금 살고 있는 곳 바로 옆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아침이면 교문 앞 저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바글거리는 아이들, 등굣길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문방구 할아버지와 떡볶이 육수를 내는 분식집 이모. 이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가만히 보면, 마음속 한편에 언젠가 죽어버린 듯한 무언가가 일렁입니다.
언젠가 친구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동생의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 37도를 훌쩍 넘어버린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한참 퍼지기 시작하던 때라 동생은 학교를 조퇴하고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워 있는데 문득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인생이 너무 짧았고, 글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더군요. 본인은 그것을 유서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복잡한 머릿속을 차근차근 정리해가며 글을 쓰던 동생. 열을 다시 재보니 36도,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를 확인한 동생은 유서를 쓰던 자리에서 그대로 종이를 찢어 버렸다고 해요. 아무도 보지 못하게. 만약 누군가 봤을 때 그 종이가 본인의 부끄러운 기억이 될 것이라 직감했었나 봅니다.
이야기를 들은 순간 ‘요즘은 완치자도 많고, 금방 나을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동시에 혹시 모를 가능성에 자신을 기억해줄 글을 먼저 남길 생각을 했다는 중학교 3학년의 순수함이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천천히 잃어버리다 이젠 거의 남지 않은 순수함으로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저도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10살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밤 저는 2층 침대에서 잠을 잤죠. 그때면 자다가 늘 비슷한 시간에 깨곤 했습니다. 어디선가 계속해서 들리는 묵직한 기계음. 우리 집에는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사람을 해치는 로봇이 돌아다녔습니다. 처음 로봇 소리를 들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떨면서 옆방에 주무시고 계시는 부모님을 걱정했습니다. 2층은 로봇의 시야가 닿지 않아 안전하지만, 보다 낮은 높이에서 주무시는 부모님께서는 로봇에게 쉽게 들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벌벌 떨다가 겨우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가 보면, 다들 평소와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죠. 몇달 뒤, 매일 밤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용기를 내어 침대에서 내려가보았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로봇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는 소리. 그 소리는…
아빠의 코고는 소리였습니다.
어쩜 사람의 코골이가 로봇이 움직이는 소리로 들릴 수 있었을까요?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였을까요?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에 어른은 ‘∼한 거야’라는 강박 아래 조금씩 순수함을 없애 왔던 것 같습니다. 멋진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을 걸면서 말이죠. 하지만 요즘은 저마다 가슴 속 어딘가 살아 있을 순수한 어린이를 깨워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할 것이 없어 무뎌진 일상 속, 우리는 늘 새로운 자극만을 찾아다닙니다. 그것은 가끔 스스로를 해치기도 하죠. 하지만 순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세상은 매일이 새롭고 특별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오는 상상들은 반복되는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죠.
마음속 숨어 있는 순수한 마음을 잘 지키고 활용하는 것도 어쩌면 멋진 어른이 되는 방법 중 하나 일지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 마음이 멍들지 않도록 함께 잘 지내면서 말이죠. 일상에 지칠 때, 한번쯤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속 깊은 곳 숨어 있는 어린 김수영에게 손을 뻗어봅니다.김수영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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