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31. 태백 경북제유소
‘조로증’ 태백 보기 드문 노포
60년간 황지자유시장 한자리
60년대 석탄산업 성황 속 개업
인구 3분의 1로 줄고 경기 부침
메주·청국장 활용 수익 벌충
이웃 “기름 더 고소” 격려 큰 힘
김 대표 “손님 밝은표정 즐거워”
30년 뒤 ‘100년 가게’ 문패 기대
태백은 참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도시다. 이제 겨우 40살을 갓 넘은 젊은 도시지만 지난 1980년대말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급속한 인구유출이 진행돼 이젠 지역소멸까지 걱정해야 하는 노쇠현상을 보이는 곳이다. 이처럼 심각한 조로증을 앓고 있는 태백에서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업체를 찾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노포’ 기획기사를 쓰기 위해 물색하다 어렵게 찾은 업체가 태백 황지자유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제유소(대표 김성태·50)다. ‘경북제유소’라는 이름을 남긴 원 소유주가 운영하던 때까지 소급하면 최소 60년 이상을 한자리에 같은 이름으로 문을 열고 있는, 지역에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오래된 가게다. 다섯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지만 ‘경북제유소’란 가게 이름은 그대로여서 경북제유소의 수 십년 단골고객이 아직도 가게와의 인연을 이어가는 어쩌면 주객이 바뀐 가게이기도 하다.
경북제유소는 지난 1960년대 황지 자유시장이 상설시장으로 형태를 갖춰가던 무렵, 비록 흙벽이지만 지붕까지 갖춘 몇 안 되는 가옥형태의 가게로 문을 열었다. 전국의 일반주택까지 연탄 난방이 속속 보급되면서 탄광지역이 급속하게 성장하던 무렵이어서 가게는 항상 손님으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때문에 황지자유시장일원에는 경북제유소를 시작으로 많은 기름집이 생겼고 지금도 시장 안에는 다수의 동종 업자들이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제유업은 다른 가게에 비해 경기변동의 영향을 덜 받는 업종이지만 태백시의 인구가 13만명대에서 인구가 3분의 1 수준인 4만명대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가게를 맡아 운영하던 처고모부(장일상)가 사망하며 지난 1985년 가게를 인수했던 김씨의 부친 김명룡 씨가 부인 장영희 씨와 20여년 가게를 운영하다 처고모부 아들에게 가게를 넘겼다. 이후 김 대표가 지난 2013년 다시 가게를 인수하는 등 지역의 경기 부침은 소유권의 이전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어린시절 학교 다닐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내 일처럼 가게일을 했기 때문에 기름 짜는 일이 낯설지 않았고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되지 않았단다. 그래도 생활은 해야 하기 때문에 김씨는 가게를 인수하며 궁여지책으로 기름가게 2층의 빈방을 활용해 메주를 빚어 판매하면서 부족한 수익을 벌충하고 있다. 때문에 경북제유소 앞 좌판에는 기름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메주와 청국장, 고춧가루 등이 판매용 기름제품과 함께 손님을 맞이한다. 여기에 부모 대에서 딸·아들, 손자 때까지 대를 이어가며 경북제유소를 찾는 단골고객은 김 대표가 매일 아침 일찍 가게문을 열도록 하는 든든한 응원군이 되고 있다. “같은 재료라도 경북제유소에서 만든 기름이 더 고소하다”는 단골손님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 김 대표는 자녀들이 원한다면 가업으로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다.
그렇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녹록하지 않다. 주 수입원인 기름 짜는 공임은 지난 1980년대 1㎏ 1000원에서 현재 3000원으로 3배가량 올랐지만 물가상승률과 손님이 줄어든 것으로 고려하면 되레 3분의 1 정도로 수입이 줄었다. 시장 내에 많은 기름집이 경쟁하고 있어 공임을 현실화하는 것도 어렵다. 사람이 밥과 반찬을 먹고 사는 한 기름가게는 망할 일이 없다는 낙관적인 생각과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최선을 다해 손님을 맞고 있다. 그나마 제유소는 일반 가게와는 달리 판매하지 못해 폐기하는 제고물량이 없어 손님 감소로 인한 추가 피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란다. 또한 고객이 맡긴 착유원료를 볶고 짜서 담아 보내는 단순작업이기 때문에 정말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고객과의 신뢰를 해칠 일도 없는 것도 장점으로 꼽는다. 대를 이어가며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김 대표 일가의 양심에 대한 보증수표인 셈이다.
김성태 대표는 “부친이 석포의 한 제련소에 근무했던 아주 어린시절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기름집 아들로 커왔고 지금도 그일을 하고 있지만 기름을 짜러 오시는 밝은 표정의 지역 손님들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고맙고 즐겁다”며 웃는다.
“손님에게는 기름향이 고소하겠지만 직업으로 매일 맡으려면 약간 질릴 수도 있겠다”는 기자의 우문에 “기름장수 경력이 10년밖에 안 돼 아직까지는 향기롭다”고 답하는 김 대표를 보며 30여년 뒤엔 경북제유소에 ‘100년 가게’ 문패가 걸리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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