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톱 찍고 서울로… ‘불로의 맛’ 좀 보이소

대구·청도/이승규 기자 2023. 1. 18.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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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town] 50년 전통 이어 온 대구 ‘불로막걸리’
지난 13일 경북 청도군에 위치한 ‘대구탁주합동’ 청도 공장 내 발효실에서 고정원 연구개발실장이 발효 탱크에 담긴 막걸리 원액을 살펴보고 있다.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발효실에서 10일 정도 발효되면 대구 대표 막걸리인 ‘불로막걸리’가 탄생한다. 발효실 직원들은 수시로 발효 탱크에 담긴 막걸리 상태를 확인하고 일지에 기록한다. /김동환 기자

지난 13일 경북 청도군에 위치한 ‘대구탁주합동’ 청도공장 내 발효실로 들어서자 막걸리향이 가득했다. 대구 대표 막걸리인 불로막걸리가 숙성되는 냄새였다. 밥 짓는 냄새와도 비슷한 막걸리향은 쌀과 밀 등의 원료가 미생물인 효모와 결합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쌀을 증기로 쪄서 만든 고두밥의 당분을 먹이 삼은 효모가 이산화탄소 가스와 알코올을 배출하며 10일 정도 발효되면 ‘불로막걸리’로 탄생한다.

이날 발효실 곳곳에선 직원들이 2441L짜리 철제 발효탱크 위에서 일일이 막걸리 원액의 냄새를 확인했다. 고정원 대구탁주합동 연구개발실장은 “냄새를 통해 원액이 제대로 발효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작업자가 수시로 일지에 상태를 기록한다”면서 “냄새가 다를 경우 막걸리 맛이 달라지는 만큼 재발효 과정을 거치거나 즉시 폐기한다”고 말했다. 발효실은 사계절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 불로막걸리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리퍼트 전 주한 미대사도 즐긴 불로막걸리

대구 동구 불로동(不老洞)은 대구 막걸리의 태동지(胎動地)로 불린다. 동구는 지역 명산(名山)인 팔공산이 위치한 곳으로, 지하 170m에서 흘러나오는 암반수가 막걸리 주조에 쓰인다. 막걸리의 맛을 결정하는 4대 요소인 물·쌀·누룩·효모 중 좋은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이다. 이 때문에 불로동을 중심으로 양조장이 생겨났다. 1970년에는 49개 양조장이 모여 ‘대구탁주합동’을 창립했다. 이때 막걸리 명칭도 지역명을 따서 ‘불로막걸리’로 지었다. 최홍렬 대구탁주합동협회장은 “불로막걸리라는 이름에는 말 그대로 ‘마시면 늙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불로막걸리는 쌀이나 밀로 만드는 누룩과 고두밥, 물, 효모 등 원료를 결합해 만든다. 발효탱크에 원료를 넣고 약 10일간 발효·숙성 과정을 거치면 막걸리 원액이 된다. 원액에서 술지게미(찌꺼기)를 거르고, 알코올 도수(6도)를 맞추는 작업을 거치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막걸리 제조 방법은 지역별로 비슷하지만 투입하는 효모에 따라 맛이 갈린다고 한다. 불로막걸리는 자체 실험실에서 배양한 살아있는 효모를 사용해 유통기한이 비교적 짧다. 그만큼 생막걸리 본연의 맛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달지 않고 묵직한 맛이 특징이다.

불로동 주민 최영도(72)씨는 “비 오는 날 빈대떡과 파전 등을 곁들인 불로막걸리는 50여 년간 대구 시민들의 애환을 달랜 먹거리였다”고 말했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도 지난 2016년 동구 불로막걸리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5잔을 마시는 등 불로막걸리를 즐겼다. 지난 2011년엔 농촌진흥청이 주최한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불로막걸리는 대구 막걸리 점유율 60%를 차지한다. 하루에 5만여 병이 생산돼 대구·경북 전역으로 공급된다. 올해부터는 서울 지역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최우석 대구탁주합동 전략기획이사는 “경영 효율화를 위해 막걸리 생산 기능을 청도로 이전하고, 대구에선 마케팅과 신제품 개발 등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탁주아카데미’ 열고, 막걸리 축제도 만들어

대구 동구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표 먹거리인 불로막걸리를 소재로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구는 우선 2025년까지 불로동 일대 14만7834㎡(4만4719평)에 사업비 약 301억원을 투입해 막걸리 제조 및 창업 지원 센터 등을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막걸리 제조 기술 등을 교육하는 시설인 ‘불로전수소’, 막걸리와 지역 음식을 주제로 한 창업 지원 시설 ‘히트’ 등이 들어서게 된다.

동구는 또 대구탁주합동의 기술을 토대로 예비 창업자들을 교육해 불로동에서 막걸리 주점과 카페, 음식점 등을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지난해 8월에는 대구 최초로 전통 탁주를 만드는 창업 교육인 ‘불로탁주아카데미’가 동구에서 열렸다. 정원 20명 모집에 지원자 61명이 몰렸다. 교육 과정은 약 3개월이다. 동구청은 수료생들 중 별도 심사 과정을 거쳐 4명에게 최대 500만원 상당의 창업 지원 비용을 올해 상반기 중 지원할 계획이다.

불로막걸리 축제도 만들어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불로시장에서 열린 첫 막걸리 축제 ‘2022 막걸리문화축제 in Bullodong’에는 1500여 명이 참여했다. 동구는 지난해 불로막걸리를 지역 공식주로 선정하기도 했다. 동구 관계자는 “청년 창업 수요가 높은 만큼 불로동을 막걸리 산업 거점으로 삼고 각종 행사를 정착시켜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동구는 불로막걸리와 함께 지역 내 다른 먹거리 산업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지난달 동구 신암동에 위치한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최우수 외식거리’로 선정됐다. 닭똥집은 닭의 모래주머니를 기름에 튀겨 만든 음식으로, 1970년대부터 평화시장 일대 골목에서 불로막걸리와 함께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은 “불로막걸리를 비롯한 다양한 먹거리는 향후 동구의 경제를 이끌어 갈 보물”이라며 “불로동을 막걸리 1번지로 만들어 관광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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