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86% “수업방해 학생, 즉각 막을 수 있게 해달라”
지난 2019년 10월 한 중학생은 수업 중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간 뒤 복도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다 교사에게 적발됐다. 교사가 여러 차례 스마트폰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학생은 교사를 쳐다도 안 봤다.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까지 나서서 스마트폰을 달라고 하자 학생은 “이런 분이셨구나, 애들이 선생님에 관해서 말 많이 하는데”라며 스마트폰을 가지고 교실로 들어갔다. 이 학교 교장은 학칙에 따라 학생에게 1시간 교내 청소를 하고 1시간은 교사에게 편지(반성문)를 쓰라는 벌을 내렸다. 그런데 학생은 원치 않는 사과 편지를 강요당했다며 학교를 고소했다. 1·2심은 교장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봤지만, 지난달 대법원은 학생 본심에 반하는 사과 편지를 쓰게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7일 초·중·고교 교사 86.3%는 문제 행동을 일으키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다른 장소에서 책을 읽게 하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제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가 나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6일까지 유·초·중·고 교직원 5520명에게 물은 결과다. 지금은 수업 중 문제를 일으켜도 곧바로 다른 교실로 보내거나, 반성문을 쓰도록 하지 못한다. 그 학생의 학습권과 양심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교권 침해 수준이 심각해지고 다른 학생의 수업까지 방해하는 일이 많아지자 교사에게 최소한의 ‘교실 질서 유지’ 권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총 조사에서 교사의 77.0%는 ‘수업 혹은 생활 지도 중 아동 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답했다. 실제 아동 학대 신고를 당했거나 동료 교사가 신고를 당하는 것을 본 적 있다는 응답도 47.5%로 절반에 육박했다. 교사들은 정당한 교육 활동은 아동 학대가 아니라는 법 조항을 신설하거나 교육청이 소송비를 지원해주는 등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민원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대책이 필요하다(87.3%)고 답했다.
지난해 11월 전북 군산에서는 중학생이 다른 반 수업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꾸중을 듣자 교사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 2주 상처를 입혔다. 학부모는 ‘교사가 먼저 멱살을 잡아 맞대응한 것’이라며 교사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같은 달 울산에서도 중학생이 ‘화장이 너무 짙다’고 나무란 교사에게 발길질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심각한 교권 침해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민 인식도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작년 9월 학부모를 포함한 성인 4000명을 조사했더니 54.7%가 학생·학부모의 교육활동 침해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 문항이 생긴 2019년도 조사 이후 가장 높았고, 전년도 조사(44.5%)보다 10%포인트나 올랐다. 설문 대상 4000명 중 초·중·고 학부모만 놓고 보면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이 51.7%로, 전체 평균보다는 약간 낮았다. 그렇더라도 4년 만에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수치다.
교권 침해가 심각해지는 이유로는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42.8%)가 가장 많이 꼽혔다. 2010년대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들어선 일부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수업시간에 잠잘 권리·휴대폰 사용할 권리’처럼 인권 개념이 왜곡되면서 교권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전년(36.2%)과 비교해서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교권 침해가 많아지는 이유에는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한 법적 제재가 미흡해서’도 12.0%를 차지했다.
교권 침해 학생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교총 조사에서는 교권 침해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남겨야 한다는 데 교사 84.8%가 동의했다. 국회에 교권 침해로 전학·퇴학 등 중대한 처분을 받은 경우, 학생부에 그 내용을 기재하도록 한 교원지위법 개정안이 발의는 됐지만 계속 계류 중이다.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고 학부모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이란 우려를 들어 전교조와 야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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