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유연하지 않으면 부러진다
가는 방향이 맞다고 해도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가야 한다. 속도조절도 해야 한다. 더 오래, 더 멀리 가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30명 미만 사업장의 8시간 추가연장근로가 종료됐다. 2021년 7월부터 50명 미만 사업장에 주52시간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2년 말까지 허용한 것이다. 일몰기간을 늘리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사업주가 법을 위반하면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다만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1년간 계도기간을 줘 처벌을 유예했다.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 '적법'은 아니다.
이 제도를 적용받는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63만곳에 달한다. 근로자는 600만명이다. 이들의 피부양자까지 헤아리면 1000만명 이상이 영향권에 든다.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몇몇 업종과 사업은 수익성을 따지기 전에 일감과 존립문제에 부딪친다. 섬유업의 경우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한다. 기계를 멈추면 다시 가동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조선·건설업은 날이 좋을 때 몰아서 작업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IT(정보기술)·스타트업의 경우 기술개발과 시스템 복구를 위해 집중근로를 수반할 때가 적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0월 5~29명 수도권 제조업체 4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1%의 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 중이거나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75.5%는 이를 활용하지 못하면 대책이 없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일감을 소화하지 못해 영업이익이 줄어들 수 있고 납기일을 못 맞춰 거래가 끊기거나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수주를 포기하거나 범법자가 돼야 한다. 지속되면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주52시간제 시행 시점은 이미 예고된 일인데 그동안 대비하지 않고 무엇을 했느냐고, 사람을 더 뽑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중소기업이 60만명가량의 인력부족 현상을 겪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지방의 인력난이 심각하다. 대기업은 주52시간제로 근로시간이 줄어도 기존에 받던 임금을 보전해줄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형편이 다르다. 뽑을 사람도 없고 인건비나 관련 행정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내국인보다 외국인으로 버틴 곳도 많은데 이제 인력이탈을 걱정해야 한다.
직원들의 '저녁이 있는 삶'도 보장되지 않는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7월 중소조선업체 근로자 300명에게 주52시간제 전면 시행에 따른 영향을 물은 결과 전체의 55%가 소득보전을 위해 투잡을 뛰느라 '삶의 질이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즉 야근·특근수당이 줄어 월소득이 30% 감소했고 추가근로시간에는 통상임금의 1.5배인 연장수당을 받는데 이것이 사라지니 퇴근 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산재위험 등 건강권이 위협받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과로와 그에 따른 피로에 노출된다는 얘기다.
현장의 요구사항은 '노사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연장근로의 단위기간을 '주'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등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제화도 주장한다. 고용부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노사합의를 전제로 연, 반기, 분기, 월단위 중 선택하는 권고문을 도출했다. 노동계의 우려를 반영해 근로자의 건강보호조치를 위해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월단위로 초과해서 확대할 경우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단위에 비례해 감축하도록 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고칠 게 있다면 고치고 가야 한다. 유연하지 않으면 부러진다.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부러진다는 것은 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다면 이들이 망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
강기택 산업2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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