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남녀 의식 잃었는데…경찰에 떠맡기는 응급센터, 왜

김창현 기자, 하수민 기자 2023. 1. 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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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지구대·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이 주취자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COVID-19)로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주취자응급센터 운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서 30년째 근무 중인 한 경찰관 A씨는 "주취자응급센터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주취자 대부분이 가지 못한다"며 "어느 정도 술에 취해야 주취자응급센터에 들어갈 수 있는지 기준이 모호해 결국 경찰이 주취자 전부를 떠맡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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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시 서초구 먹자골목에서 주취자 보호조치를 진행 중인 경찰과 구급대원. /사진=김창현 기자


#지난해 10월 11일 서울시 서초구 먹자골목에서 만취한 사람 두 명이 노상에 드러누워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오전 4시20분쯤 인근 파출소 경찰관들이 현장에 출동했다. 한 명은 발목이 돌아간 채로 차도 위에 누워있었다. 또 다른 한 명도 연석에 걸터앉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은 안전을 확보한 뒤 발목이 돌아간 사람을 병원으로 후송하기 위해 119를 불렀다. 구급대원은 발목이 돌아간 사람은 구급차에 태웠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던 주취자는 데려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9일 오전 5시50분쯤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한 지구대에 주취자 한 명이 들어왔다. 택시 기사가 술에 취한 손님이 일어나지 않자 인근 지구대에 인계했다. 주취자는 경찰관이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오전 6시10분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맥박이 정상이라는 이유로 구급대원들은 의식이 없는 주취자를 지구대에 둔 채 떠나고자 했다. 경찰관이 10여 분간 설득한 뒤에야 구급대원이 주취자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후송했다.

일선 지구대·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이 주취자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COVID-19)로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주취자응급센터 운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4만6000여건이었던 주취자 관련 신고건수는 2020년 4만3000여건, 2021년 3만3000여건으로 줄었지만 사적모임인원과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된 2022년 3만8000여건으로 늘었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인 2018년(3만8000여건)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됐다.

직무집행법령 제4조에 따르면 주취자 보호조치 신고가 접수될 경우 경찰과 구급대원은 함께 술에 취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 이에 서울청은 2011년 10월부터 경찰이 안전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는 만취자를 병원 응급실로 인계해 보호할 수 있는 '주취자응급센터'제도를 시행 중이다. 술에 취해 의식을 잃어 보호자를 찾을 수 없거나 경찰 업무를 방해할 정도로 통제가 어려운 사람이 대상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응급실 우선순위에서 주취자가 밀리며 주취자응급센터 제도는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일부 병원에서는 응급실이 폐쇄되며 주취자응급센터도 함께 문을 닫았다. 문이 열려있는 병원 응급실에서도 코로나 감염 확산 우려로 주취자를 꺼린다. 2021년까지 주취자응급센터는 국립중앙의료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적십자병원, 동부병원, 서남병원 총 6곳에 마련됐었지만 2023년 현재는 동부병원과 서남병원을 제외한 4곳에서만 운영 중이다.

병상 수뿐 아니라 주취자응급센터 이용자 수도 급감했다. 주취자응급센터를 보유한 병원 6곳은 국 가나 지방 자치 단체에서 설립하거나 위탁하는 공공 병원이기에 2020년부터 감염병전담병원에 지정돼 코로나 환자를 위한 병상을 확보하느라 주취자를 받을 여력이 되지 않은 탓이 크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코로나 환자로 응급실이 만원일 때면 코로나 환자뿐 아니라 주취자도 코로나에 2차 감염되지 않도록 받지 않는 게 맞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급대원들도 주취자로 출동했다가 맥박만 확인하고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잦다. 이럴 경우 경찰이 오롯이 주취자를 책임져야 한다.

서울에서 30년째 근무 중인 한 경찰관 A씨는 "주취자응급센터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주취자 대부분이 가지 못한다"며 "어느 정도 술에 취해야 주취자응급센터에 들어갈 수 있는지 기준이 모호해 결국 경찰이 주취자 전부를 떠맡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취자응급센터에 입소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경찰과 구급대원, 의료진 모두가 객관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관 B씨는 "코로나 방역조치가 완화된 2022년 주취자 신고건수가 늘어난 게 체감된다"며 "주취자 안전을 보호하는 게 경찰 임무이지만 구급대원들이 의식 없는 주취자를 받지 않으면 주취자 안전이나 생명을 경찰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데 경찰은 의료 전문가는 아니다"고 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의식이 없는 사람은 겉으로는 술에 취해 잠에 든 것처럼 보여도 뇌졸중 등 다른 질환을 배제할 수 없다"며 "폭력을 휘두르거나 의식이 있는 주취자는 당연히 경찰에서 보호조치를 해야 하지만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의식이 없는 사람은 구급대원과 의료진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의식이 없는 주취자를 구급대원이나 의료진이 아닌 경찰이 붙잡고 있는 건 경찰력 낭비다"며 "코로나로 이용률이 줄어든 주취자응급센터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현 기자 hyun15@mt.co.kr,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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