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농사꾼이 스마트팜 경영인으로… “재배-유통-마케팅 망라 사업모델 꿈”

유재영 기자 2023. 1. 18.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농업에서 미래를 찾는다]‘팜큐베이터’ 대표 김기현 씨
학창 시절부터 농사를 지을 운명임을 직감했다는 김기현 씨는 지속 가능한 농업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전념할 생각이다. 김 씨가 팜큐베이터에서 자식처럼 애지중지 재배하는 토마토를 살펴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전북 김제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김기현 씨(32·팜큐베이터 대표)는 농부가 되고자 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매일 반복하는 의례가 있다. 미국의 스타 요리연구가이자 유명 식당 셰프인 댄 바버의 강연 동영상 ‘내가 사랑에 빠진 생선’을 꼭 본다. 바버는 강연에서 지속가능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전한다. 김 씨는 이 영상을 보고 바른 농사를 짓는 농부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렴풋이 농부가 되려는 꿈은 갖고 있었다. 대학을 전북대 농생물학과로 진학했고,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행사장에서 농산물을 팔아보기도 했다. 필리핀 환경청에서 인턴 근무를 해봤고,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시에서 도시농업관리사로 일했다.

“배운 농업 지식으로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해서 잘 팔면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인생 선택이었어요.”
○ 무작정 감자 농사 발품, 논에서 도시 물을 빼다

2019년 초 외가가 있는 김제로 귀농을 한 김 씨의 눈에 처음 들어온 건 감자였다. 김제시 광활면은 봄 감자 전국 생산 물량의 약 40%를 생산하는 지역. 가장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해보겠다고 뛰어든 김 씨에게 아주 적합한 작물이었다. 타깃을 정한 김 씨는 한겨울에 무작정 감자 농사를 배우러 광활면 곳곳을 다녔다. 이런 열의에 논 3필지 농사를 지어보겠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2019년 5월 김 씨는 처음으로 농부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논농사를 지어보면서 초보 농부의 티를 조금씩 벗은 김 씨는 이듬해 본격적으로 감자 농사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팜(전통 경작 방식의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시스템) 창업을 위한 경쟁력을 키웠다.

“옆 논에서 농사를 짓던 어르신이 ‘워메, 젊은 놈이 독하네. 쉬어가면서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만 생각하면 쉬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더라고요. 하하.”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대상자로 선정돼 지원을 받은 그는 겨울철 한파 기간 하우스에서 감자를 길러보고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온실 환경 관리 노하우 등을 쌓았다. 영하 8도 근처까지 떨어지면 감자가 죽어버려 영하로 기온이 내려갈 때마다 신문지에 불을 붙인 채로 밤새 하우스 안을 돌아다니곤 했다.

“매번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 농사를 짓는다면 농업 공부가 쓸모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씨를 이겨보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작물 생장에 필요한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정밀하게 관리하는 법을 익힌 김 씨는 지난해 1월 김제시 스마트팜 혁신밸리에 입주해 토마토 농사도 짓고 있다. 새벽부터 온실에서 재배, 수확 관리를 비롯해 상품 포장, 납품까지 전 과정의 일을 팀원들과 같이 한다. 영농일지, 사업 계획서 작성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마트 등을 찾아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임대 농장의 대표로 기술센터와도 다양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지역에 공헌하는 농업 경영인이 꿈

청년 농부가 된 김 씨는 농업 경영인을 꿈꾸고 있다. 농장 임대 기간이 끝나는 2024년 6월부터 김 씨는 창업에 도전할 생각이다. 재배, 유통, 홍보마케팅, 시설, 가공, 교육·체험 등을 잘 버무려 운영해 좋은 상품을 출시하고 동시에 체계적인 농업 비즈니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 귀농을 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대학에서 작물 생리, 작물 재배법 등을 배웠지만 막상 농사를 시작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그때 마을 주민들이 농사의 모든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지역 네트워크에 녹아들면서 농사를 점차 알아가는 청년후계농이 돼서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김 씨는 쉬는 날에도 여러 임시장터에 나가 농산물을 홍보하고 지역 동아리, 지역 정책 서포터스, 마을 기자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주민 4명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는데 앞으로 지역 일자리 창출에 더 기여할 생각이다. 김 씨는 “이분들과 오래 같이 농사를 짓고 싶고, 농업을 기반으로 한 창업 방식도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자신이 청년 농업인이 돠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농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 사업이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생활비나 정책자금 융자 등은 아주 중요합니다. 농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안전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많은 예비 또는 청년 농업인들이 이 사업에 응모해 용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