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소통 보약 열정 보약
내 나이 마흔이던 2002년 11월 15일, 이십 대 중반부터 피워 왔던 담배를 단방에 끊었다. 계기는 너무나 단순했다. 그날 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가벼운 차림으로 장산 정상에 갔다 올 요량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물통과 사탕 대여섯 개, 초코파이 서너 개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장천사 코스로 이십 분쯤 올라, 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식힐 참이었다. 그곳은 내가 장산을 즐겨 오르던 시절, 종종 쉬어가는 장소였다. 숨도 돌릴 겸 해서였지만 담배를 피워야 했으므로. 오랜 기간 흡연이 몸에 배어있던 때라 그날도 자동으로 호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다 아차차! 담뱃갑을 꺼내기도 전에 제풀로 화딱지를 내고 말았다. 배낭과 소지품을 챙길 때 담배가 한 개비밖에 없다는 걸 알고선, 가다가 슈퍼에 들러 담배를 사 넣어 온다는 게 깜빡 잊고 그냥 올라와 버렸기 때문이다.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곤 안절부절, 가만있질 못했다.
담배를 피워 본 사람은 알 테다. 담배를 구할 수 없는 처지에서 한 개비만 남았을 때의 그 불안감을. 라이터까지 꺼내 들었으나 이내 고민에 빠졌다. 담배 사러 내려가자니 등산을 포기해야 할 것 같고. 여기서 피고 정상까지 갔다 오자니 담배가 피우고 싶어 환장할 것 같고. 족히 세 시간은 참아야 할 테니. 적당하기로는 여기서 피우고 산마루를 돌아 헬기장에서 하산하면 되는데, 그건 한 시간 거리도 되지 않는지라 등산을 포기하는 거나 매한가지고.
조금 참았다가 정상에 가서 피우고 돌아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건 담배를 피우던 당시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였다. 그럴 바에야 걱정거리를 아예 없애버리자! 하여 한 개비 남은 담배마저 발로 짓이겨버렸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정상에 갔다 와보자며. 그때의 산행은 정말이지 속이 타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담배가 피우고 싶던지.
한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본즉, 반나절이나마 담배를 피우지 않은 내가 대견스럽기도 했거니와 그 순간이 아까웠다. 그럼 이참에 담배를 끊어보자, 하고 결단을 내렸다. 한 보름간은 정말로 사투를 벌이다시피 견뎌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엔 웬만큼은 참겠는데, 흡연자와 만났을 때가 문제였다. 특히 술자리 같은. 해서 지인들에게 당분간 술자리를 피한다고 주지시켜 놓고 실제로도 만남을 자제했다. 담배를 끊으려면 술도 끊는 것이 옳겠다 싶어. 특히나 그때가 연말이었으니 만큼 술자리에 가면 담배 끊기란 더 어려울 터.
그때부터 15년이 지나는 동안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실로 담배는 냄새만 맡아도 도망갈 정도로 피하게 됐다. 그즈음 소설 쓰기에 도전했는데, 그러다 보니 일부러라도 사람들을 만나야 할 일이 생겼다. 취재가 필요했으므로. 현지인들을 맨입으로 취재하기가 송구해서 마을 슈퍼나 허름한 반점으로 데려가 약소하나마 소주라도 대접하려니까, 인사가 영 말이 아니었다. 나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면서 술을 사준다니까, 받는 사람 입장이 어떠했겠는가. 어쩔 수 없이 낸 아이디어가 대작한답시고 막걸리에다 요구르트를 타서 마셔주곤 했는데.
그러다 산으로 백패킹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술에 대한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 알다시피 산 정상은 아침엔 엄청 춥다. 텐트 치고 침낭에서 잔다지만 밖으로 나오면 한기에 몸이 덜덜 떨린다. 그런 때 뜨거운 물에 커피믹스 두 봉지와 위스키를 조금 타서 마시면 열기가 확 오른다.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 감동에 바쿠스의 묘법이 더해지면 내 마음은 붕붕.
비록 두어 잔밖에 못 마시지만 요구르트 막걸리가 나에겐 ‘소통 보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짓기에 따른 취재상 필요해서 그랬지만, 중년의 남자에게 한잔 술도 없으면 사람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금연은 백번 잘한 일이고, 음주에 대해서는 좀 너그러워졌다. 위스키 커피가 내 몸을 덥혀주고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열정 보약’이 되었으니 말이지. 실제로 당분과 카페인, 알코올이 적당히 들어있는 만큼 글 쓰는 나에겐 중요한 보약이고 말고. 과음만 주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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