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감성 흉내는 그만” 예약만 100만대 넘긴 테슬라 이 차
삼성전자는 지난달 아시아계 최초 벤츠 디자이너로 이름난 이일환(휴버트 리) 메르세데스 벤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MX(모바일 경험) 사업부 디자인팀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새로운 콘셉트를 개발해 디자인으로 입히는 일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벤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량 중 하나로 꼽히는 2세대 CLS를 디자인했다. 이 부사장은 앞으로 나올 스마트폰, 탭, 워치 등 갤럭시 제품 디자인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현대차는 포니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루를 소환했다. 현대차는 주지아루와 손잡고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했던 포니 쿠페 콘셉트카를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차세대 아이오닉5 등에 이 디자인을 계승할 예정이다.
제품의 성능과 기술에 몰두하던 기업들이 ‘디자인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자·자동차 제품의 성능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디자인이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사용자 편의를 적절히 반영하면서도 차별화된 디자인을 내놓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애플에서 벗어나야 산다
지난 10여 년간 전자 제품 디자인은 애플이 주도했다. 심플하고 세련된 감성을 내세워 디자인만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팬층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유럽에선 디자인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애플을 꼽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애플의 디자인을 추종한 탓에 모든 제품이 비슷해져 간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스마트폰부터 자동차, 전자시계, 홈 로봇 등 주요 제품이 애플화돼 간다”며 “이런 디자인은 지루해졌다”고 했다.
탈(脫)애플 디자인으로 업계의 주목을 끄는 건 테슬라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테슬라의 프란츠 폰 홀프하우젠 수석 디자이너는 “사이버 트럭의 양산형 모델 디자인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 차량은 양산의 정확한 시점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전 예약이 100만대를 넘었다. ‘투박하다’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과감한 직선 디자인이 소비자들을 열광시키는 요소다. 주요 외신들은 “전혀 애플스럽지 않고 주변 것과 완전히 다른 게 인기의 요인”이라고 평가한다.
국내 대표 기업들도 애플을 벗어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람을 영입하고 디자인 조직을 강화하는 게 공통적 현상이다. 삼성은 이일환 부사장을 영입하면서 기존 부사장급이던 디자인경영센터를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에게 맡겨 사장급으로 강화했다. 현대차 역시 지난해 말 인사에서 유일한 사장 승진자는 루크 동커볼케 크레에이티브 책임자(CCO)였고, 카림 하비브 기아 디자인센터장 역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LG전자도 혁신 상품·서비스·사업모델 기획 등을 총괄하는 고객경험(CX)센터를 신설하고, 센터장에 디자인경영센터장을 역임한 이철배 부사장을 임명했다.
◇이름, 엠블럼도 재 디자인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시장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가 심해지며 업체 간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한 3억100만대로 2014년 3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JD파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선 1370만대의 차량이 판매돼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한 IT 업체 관계자는 “혁신적인 기능 개선이 줄어들면서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줄고 교체 주기도 길어지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 부각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엔 회사 이름, 엠블럼까지 바꾸겠다는 기업도 늘고 있다. 벤츠는 전기차 브랜드를 총칭한 ‘EQ’라는 브랜드를 폐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전기차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지적이 있는 데다 브랜드의 디자인 요소까지 감안해 조정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쌍용차를 인수한 KG그룹이 쌍용차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KG모빌리티’로 사명을 교체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KG그룹 관계자는 “쌍용이라는 이름값과 비용 부담을 고려한 반대도 있었지만, 전기차 시대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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