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이런 국회엔 세금이 아깝다

최원규 논설위원 2023. 1. 18.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특검법 뒤늦게 개정해 재판 지연
낙태죄 법 개정 시한 2년 넘겨
야간집회 법 개정은 12년째 방치
그러면서 검수완박 등 입법 횡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6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흔치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애초 구속됐다가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래도 재판이 이렇게 길어지는 건 당사자에게 고통이다. 어느 법조인 말처럼 재판 지연은 신체의 구금이 없더라도 정신을 구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혜진 노조법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긴급좌담회 '노조법 개정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과 노조법 2·3조신속 개정 촉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1.06. /뉴시스

당사자들이 다툴 게 많아서라면 모르지만 이건 그것도 아니다. 이 사건은 김 전 실장 등이 좌파 성향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지원 배제를 지시해 직권을 남용했다며 박영수 특검팀이 기소한 것으로, 3년 전인 2020년 1월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재판이 마무리 단계까지 간 것이다. 그런데 2021년 7월 박 특검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연루돼 특검을 사퇴하고, 특검보까지 함께 물러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형사재판을 하려면 검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할 사람이 다 사라져 재판이 중단된 것이다.

특검이 사표를 내면 대통령이 후임을 임명하면 된다. 관련 특검법에도 그렇게 하게 돼 있다. 그런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새 특검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또 특검법에는 특검 부재 시 특검 임명 절차는 있지만 특검 부재 시 재판 중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일종의 입법 미비다. 그렇다면 국회라도 법을 개정해야 할 텐데 그것도 안 했다. 그러다 지난달에야 개정안이 통과됐다.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과 특검보가 모두 공석이 됐을 경우 해당 사건을 관할 검찰청 검사장에게 승계한다는 조문을 새로 추가한 것이다. 이 간단한 일을 하는데 1년 5개월이 걸렸다. 재판 지연을 방치한 법원, 문 전 대통령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신속하게 후속 입법을 하지 않은 국회 책임도 크다.

사실 국회에서 이런 정도의 직무유기는 약과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듬해 말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을 바로 위헌으로 할 경우 생기는 혼란을 막기 위해 법 개정 시한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개정 시한을 지키지 않아 2년 넘게 입법 공백 상태다. 낙태 문제는 어린 생명과 그 생명을 담은 여성의 건강에 관한 중요한 문제다. 임신 중지 결정 가능 기간 등 결정해야 할 요소가 많고 복잡하다. 그런데 국회는 정쟁에만 몰두할 뿐 입법엔 별로 관심이 없다.

야간 옥외 집회 문제는 더 심각하다. 헌재는 2009년 9월 일출 전이나 일몰 후에 옥외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법 개정 시한을 2010년 6월까지로 정했는데 국회는 12년 넘은 지금까지 개정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집회는 사실상 24시간 허용되는 상황이고, 경찰은 ‘사생활 평온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는 다른 조항을 끌어들여 야간 집회를 금지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큰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고 중요한 정책들을 이렇게 등한시해도 되나.

헌법상 부여된 국회의 입법권은 국민에게 보탬이 되는 좋은 입법을 하라는 의무이기도 하다. 그 의무를 저버린 국회에서 민주당은 지난 정권 때 북한 김여정이 하명하자 대북전단금지법을 강행했다. 5·18에 대해 정부 발표와 다른 주장을 하면 처벌하는 법도 시행했고, 검찰 수사 방탄 차원에서 ‘검수완박법’도 밀어붙였다. 해야 할 일은 안 하면서 입법권을 멋대로 휘두른 것이다. 압도적 의석을 무기로 벌인 입법 독재이자 횡포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이런 국회를 위해 세금을 쓴다는 게 너무 아깝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